KISTI와과학

괴짜 연구 이그노벨상, 올해의 주인공은? (KISTI)

조조다음 2013. 10. 31. 06:40

 

 

“Please Stop, I am bored!(그만둬요, 너무 지루하다고요!)”

8살 남짓한 여자 아이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연구자에게 다가와 두 마디의 말을 날린다. 주어진 60초의 시간을 모두 썼으니 멈추라는 의미다. 시상식장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고, 당황한 수상자의 반응은 웃음소리를 더 키운다. 재밌고 기발한 연구를 골라 상을 주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다운 장면이다. 연구자가 수상소감을 그만둘 때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스위티 푸(Ms. Sweetie Poo)’의 활약은 매년 행사를 더 즐겁게 만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위티 푸와 함께 신나는 이그노벨상이 돌아왔다.

미국 하버드대의 잡지, ‘기발한 과학 연구(AIR)’는 2013년 9월 12일 하버드대 선더스 극장에서 제23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을 열었다. 수상 목록을 보면 황당하고 우습지만 이런 연구가 영 엉터리는 아니다. ‘처음엔 사람들을 웃기지만, 그런 뒤에 생각하게 하는(first makes people laugh, and then makes them think)’ 연구라는 원칙으로 선정되기 때문이다.

올해 심리학상을 수상한 연구는 일상과 가까운 ‘술’에 대한 연구라 더욱 흥미롭다. 우리는 흔히 술을 마시면 안 예쁘던 여자도 매력적이고, 못 생겼던 남자도 멋져 보인다고 말한다. 이른바 ‘비어 고글(beer goggle)’ 현상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로랑 베규(Laurent Bègue)와 미국의 브래드 부시맨(Brad Bushman) 등으로 이뤄진 공동 연구진은 이와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놨다. ‘술 취한 사람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술 취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발표하게 했다. 그러자 맨 정신일 때보다 훨씬 똑똑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게 드러났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술에 취하면 사랑을 고백하기 쉬운지도 모른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의학상은 심장을 이식한 쥐에 오페라를 들려준 일본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그냥 두고, 다른 쪽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들려줬다. 그 결과 음악을 듣지 않은 쪽은 평균 1주일 뒤에 죽었지만 오페라를 감상한 쪽은 3주 넘게 살았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음악이 동물의 면역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상식장에서 이들이 생쥐로 분장하고 ‘라 트라비아’를 부르는 바람에 관객들은 더 크게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만 선정되는 노벨상과 달리 이그노벨상은 사망한 과학자에게도 주어진다. 올해 안전공학상을 받은 미국의 발명가 구스타노 피조(Gustano Pizzo)도 2006년 타계한 사람이다. 그는 비행기 납치범을 낙하산에 묶어 경찰에게 내려 보내는 방법을 고안해 1972년 미국 특허를 받았는데, 이것이 올해 안전공학상 부분에 뽑혔다.

이 시스템은 납치범을 함정에 빠뜨린 뒤 캡슐에 넣고 비행기 밖으로 떨어뜨리도록 설계됐다. 캡슐은 추락하면서 전파를 보내 현재 위치를 알리고 낙하산을 펼쳐 무사히 착륙한다. 그러면 미리 도착한 경찰이 캡슐 속 납치범을 체포하게 되는 것이다. 특허를 받은 지 한참 지났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피조의 발명품은 이그노벨상 덕분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을지 연구한 이탈리아 알베르토 미네티(Alberto Minetti) 교수팀은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 중력(중력가속도 9.8㎨)의 16% 정도인 달의 중력에서 사람이 물갈퀴를 부지런히 구르면 물에 빠지지 않는다. 만약 달에 호수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는 결과보다 실험 과정이 재미있다. 사람을 인공장치로 매달고 물갈퀴를 신겨 어린이 수영장 수면 위에서 직접 달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인공장치는 줄의 세기를 조절해 중력을 줄였고, 물갈퀴는 가라앉기 전에 물을 박차는 데 도움을 줬다. 중력을 줄여 가벼워진 인간은 바실리스크도마뱀처럼 수면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건 ‘말도 안 된다’고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이 연구가 보여줬다.

화학상은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 나는 이유를 보다 자세히 밝힌 일본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지만 연구자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덕분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양파의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마지막 단계를 담당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괜한 수고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논문은 네이처에 실릴 정도로 학술적인 의미를 인정받았다.

앉아 있는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는 시간을 측정한 연구는 확률상을 받았다. 영국의 버트 톨감(Bert Tolkamp) 박사팀은 암소 73마리의 다리에 센서를 붙이고, 앉았다 서는 변화를 컴퓨터로 측정해 통계를 냈다. 그 결과 암소는 누운 지 15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일어설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서 있는 암소가 언제 누울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호기심을 채우려 너무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연구는 암소의 발정이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데 쓸모 있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이그노벨상 취지에 꼭 맞게 우습지만 의미 있는 연구인 셈이다.

생물학-천문학 통합상을 받은 주인공은 쇠똥구리를 연구한 스웨덴의 마리 데크(Marie Dacke) 박사팀이다. 쇠똥구리는 주로 일직선으로 움직여 자신이 만든 쇠똥경단을 빠르게 옮기는데, 이때 태양이나 달을 보고 방향을 찾는다. 그렇다면 달이 없는 밤에는 어떻게 할까. 데크 박사팀은 이런 상황에서 쇠똥구리가 은하수를 기준으로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자들은 쇠똥경단을 닮은 커다란 공을 가져와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고학상에는 캐나다의 브라이언 크랜달(Brian Crandall) 박사팀의 연구가 뽑혔다. 연구 목적은 포유동물이 어떤 뼈를 소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인데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다. 실험 참가자에게 설익은 뾰족뒤쥐를 삼키게 한 뒤 분변을 받아 어떤 뼈가 나왔는지 조사한 것. 이 결과로 인류 거주지에 남은 뼈 화석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받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공중보건상은 잘린 음경을 다시 붙이는 수술을 선보인 태국 의료진에게 돌아갔는데, 이 또한 이그노벨상다운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평화상은 2011년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금지한 벨라루스 대통령(알렉산드르 루카셴코)과 손이 하나뿐인 남성을 체포한 남성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시상식장에서는 한 팔을 몸에 붙인 채 두 사람이 나머지 한 손만으로 박수를 치려 낑낑대는 장면이 연출됐다. 물론 이건 평화상을 받은 두 사람을 비꼰 행동이다.

올해 수상자들은 상금으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 원)를 받는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하지만 기준 화폐가 미국 달러가 아닌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한바탕 크게 웃겼다. 짐바브웨 달러는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경제개혁 실패로 화폐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2009년 사용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를 우리 돈 4,000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으니 10조 짐바브웨 달러는 많은 돈이 아닌 것이다.

연구결과뿐 아니라 시상식 전체를 소소하게 재미와 기발함으로 무장한 이그노벨상. 널리 알려진 것을 거꾸로 보고(심리학상), 더 깊게 파고들고(화학상), 쓸데없어 보이는 생각을 발전시키는(물리학상) 등의 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어떤 발상도 하찮은 건 없다. 중요한 건 어떤 눈으로 보고 대하느냐다.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발상이지만 도전해서 성과를 이뤄낸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자세를 배운다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일궈낼 수 있지 않을까.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