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장기를 새로운 장기로 바꿔주면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에 장기이식과 관련된 신화가 있고, 기원전 700년 인도에서도 자기 조직을 이식해 코 성형수술을 한 기록도 남아있다. 11세기에는 치아이식이, 15세기에는 피부이식이 시도됐다. 하지만 자기 조직을 이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근대의학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 18세기부터 의학자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이식에 관한 지식을 얻기 시작했다. 영국의 외과의사 존 헌터는 닭의 고환이나 동물의 아킬레스건을 동종끼리 이식했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돼 1880년에는 각막이식에 성공했다.
그러나 피부나 각막 같이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체내의 장기 같은 기관을 이식하는 것은 20세기가 될 때까지 불가능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작은 혈관이라도 막히지 않고 혈액을 통과시킬 수 있게 하는 봉합기술과 미세수술 기술이 부족했다. 둘째, 수술 후 이식한 장기가 염증을 일으키며 손상돼 버리는 현상, 즉 ‘거부반응’이 생겼다.
이 중 혈관 봉합기술은 1910년대에 해결됐다. 동맥을 자르고 이어줄 때 혈관 조직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잠시 피가 흐르지 않도록 집어주는 가위 모양의 동맥 겸자가 등장했고, 미국의 의학자 알렉시스 캐럴이 서로 이어줄 양측 혈관 단면을 삼각형처럼 만들어 봉합하는 ‘삼각봉합법’을 고안해 냈다. 캐럴은 삼각봉합법을 고안해 동물 이식 실험을 한 공로로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혈관을 이어주는 수술 기술이 확립되자 가장 먼저 이식 수술의 대상으로 떠오른 장기는 신장이다. 신장이식수술은 이미 1936년 러시아의 보로노이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비록 환자는 수술 후 이틀 만에 사망했지만 장기이식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수술로 기록된다. 이후 많은 의사들이 신장 이식수술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1969년 3월, 서울 명동의 성모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에 성공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장기이식수술로, 국내 이식 의학의 바탕이 된 의미 있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최초로 시도된 장기이식이 심장, 간, 폐 등 다양한 장기 중 왜 하필 신장이었을까? 신장은 우리 몸에 두 개가 있기 때문 장기 제공자를 얻기 쉽다. 또한 내장 뒤에 위치해 비교적 쉽게 떼어낼 수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긴 동맥과 정맥, 요로를 이어주면 되기 때문에 다른 장기에 비해 수술이 쉽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수술이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가는 동안, 극소수이지만 희망적인 결과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47년 미국 보스턴에서 있었던 신장이식 수술이 그랬다. 독일의 의사 후프나젤은 임종 직전인 여자의 신장을 떼어 생명이 위독한 임산부에게 일시적으로 이식했다가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식한 신장을 도로 떼어냈다. 비록 완벽한 이식은 아니었지만 이식한 신장은 산모의 신장이 급성신부전에서 회복하는데 필요한 3일간의 시간을 벌어줬다. 1950년에는 혈액형만 동일한 타인의 신장을 이식받은 터커라는 사람이 11개월이나 살아남는 기적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거부반응은 여전히 장기이식에서 최대의 난관이었다. 이식에 필요한 외과적 문제들은 이미 극복했지만 거부반응은 정확한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54년 미국의 조셉 머레이가 일란성 쌍생아끼리의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이로써 일란성 쌍생아끼리는 장기를 이식하더라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머레이의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거부반응이라는 장애물을 완전히 해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레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부반응 문제가 일란성 쌍생아라는 편리한 도구에 의해 잠시 우회됐을 뿐’이었다.
그러다 1960년 프랑스의 장 도세가 백혈구 항원이 거부반응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써 의사들은 백혈구 항원이 비슷한 사람끼리 장기를 이식하면 거부반응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부반응의 원인이 우리 몸을 방어하는 수단인 ‘면역 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식수술에 면역억제제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머레이는 1962년 쌍생아가 아닌 타인 사이의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하고 199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는다.
거부반응의 원인이 면역의 문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면역억제제 개발이 중요한 변수가 됐다. 하지만 거부반응을 완전히 억제해 주는 면역억제제가 없어 이식수술의 성공률은 매우 낮았다. 그러던 1972년 획기적인 면역억제제가 등장했다. 스위스 제약회사 산도즈의 보렐이 이끄는 연구팀이 노르웨이의 흙 속에서 발견한 곰팡이의 부산물로 강력하면서도 부작용이 적은 면역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을 탄생시킨 것이다. 사이클로스포린은 당시 18%에 불과하던 간장이식 성공률을 단번에 68%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 후로 사이클로스포린과 다른 면역억제제를 함께 쓰는 ‘칵테일요법’은 장기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거부반응을 극복하게 해 줬다. 조금 과장해서 사이클로스포린 발명 이후 장기이식은 단지 외과 기술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 넘치는데 비해 장기공여자는 늘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장기를 개발하거나 돼지 등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간이식’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렇듯 여러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는 장기이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이재담 울산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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