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폐증을 앓고 있는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자폐증에 대한 관심이 크다. 자폐증은 사회적 의사소통 결핍이나 이상, 반복적이거나 틀에 박힌 행동 문제가 유아 시절 시작돼 거의 평생 지속되는 뇌 신경 발달장애다. 아직까지 자폐증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치료제도 없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분당서울대병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공동 연구팀이 아시아 최초로 대규모 한국인 자폐증 가족 코호트를 모집하고 전장 유전체 분석을 실시해 자폐증 유발 유전변이가 단백질을 암호화하지 않는 유전체 영역인 비-부호화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고, 이를 통해 자폐증 원인의 새로운 이해와 치료 전기를 마련했다.
연구팀은 813명의 자폐 환자와 그 가족들의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3차원 공간상의 염색질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분석 방식을 사용해 유전체의 비-부호화 영역을 집중적으로 규명했다. 비-부호화 영역은 유전체 데이터의 98%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간 자폐증 유전체 연구에서 조명받지 못했다. 분석 결과, 비-부호화 영역에서 발생한 유전변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자폐 유전자의 기능에 심각한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 자폐증 가족으로부터 직접 인간 줄기세포를 제작해 태아기 신경세포를 재현했으며, 생애 초기 신경 발달단계에서 비-부호화 영역의 유전변이에 의해 최대 500,000 base-pair(유전체 거리 단위) 이상 떨어져 있는 유전자의 발현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는 자폐증의 근본 원인을 규명한 획기적인 연구결과로, 자폐증 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KAIST 의과학대학원 졸업생 김일빈 박사는 “신경발달장애 중 자폐증은 특히 치료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유전체 영역의 이상을 한국인 고유의 데이터를 사용해 순수 국내 연구진들의 힘으로 발견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이 연구 성과가 언젠가는 이루어질 자폐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작은 발판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유희정 교수도 “우리나라 연구진의 힘을 모아 자폐증의 비밀을 풀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연구에 참여해 준 당사자와 가족들의 헌신으로 이룬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폐증의 발병 기전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아가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직 연구해야 할 것이 많다. 유전체 연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며, 자폐증을 가진 분들과 가족들의 관심도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연구내용은 세계적 정신의학 학술지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 7월 15일 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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