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전투기 디테일

조조다음 2022. 8. 15. 06:30

오랜만에 등장한 <탑건>의 후속작, <탑건: 매버릭>이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평론가와 관람객 모두 하나같이 오락영화의 본연에 충실한, 더할 나위 없는 속편이라는 의견이다. ‘파일럿 붐’을 일으켰던 작품의 속편답게 상영 후 각국 공군과 해군 지원이 급증했다는 소식도 흥미롭다.

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의 중심에는 전투기가 있다. <탑건> 시리즈는 영화 사상 현대 공중전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탑건> 1편의 주인공은 톰 크루즈가 아니라 F-14 톰캣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파일럿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디테일에 대한 꼼꼼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탑건: 매버릭>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엔진이 두 가지는 돼야 극초음속기지!
 
영화 도입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다크 스타’부터 살펴보자. 다크 스타는 극 중 피트 ‘매버릭’ 미첼이 테스트 파일럿으로 탑승하는 시험기다. 설정상 마하10까지 도달할 수 있는 유인기다. 항공기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관객이라면 실루엣만 보고 ‘어?’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바로 역사상 가장 빠른 군용기, SR-71 블랙버드와 그 후속기로 계획 중인 SR-72를 적당히 섞은 기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 중의 다크 스타는 SR-71과 SR-72 프로젝트를 담당한 ‘스컹크 웍스’ 팀의 자문을 받아 디자인됐다고 한다.
실제 개발팀이 자문한 기체답게 영화에서 묘사되는 다크 스타의 비행 메커니즘은 실제 항공기에 적용된 기술을 잘 보여준다. 일반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그저 스로틀을 올리는 대로 엔진 출력이 쭉 올라가서 마하 10에 이르는 식으로 묘사했을 터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은 마하 3~4를 지나치는 구간에서 초음속 구간의 제트엔진 가동을 멈추고 극초음속 구간의 ‘램제트’ 엔진을 가동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이는 실제 제트엔진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장면이다. 제트엔진은 고밀도로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폭발시켜서 추진력을 낸다. 현대의 터보제트엔진은 공기의 압축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엔진 앞에 팬을 부착하는데,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면 팬은 오히려 공기의 압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일정 속도를 넘어서면 팬이 아무리 빨리 회전해도 비행기가 전진하면서 밀려드는 양만큼의 공기를 엔진에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터보제트엔진만으로는 마하 2~3 정도의 속도가 한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램제트 엔진으로, 팬이 없이 엔진의 형상만으로 공기를 압축해서 작동한다. 팬이 없기에 비행기가 빨라질수록 공기 압축 효율이 높아져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저속에서는 압축이 불가능해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SR-72는 마하 2~3까지를 담당하는 터보제트엔진과 그 이상의 속도를 담당하는 램제트엔진, 두 가지 엔진을 장착하여 속도에 따라 다른 엔진을 사용한다. 영화에서 묘사한 그대로다.
만화 같은 움직임을 가능케 한 강력한 엔진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과 관객의 탄성을 동시에 자아낸 ‘무중력 기동’도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지만 가능한 기동이다. 아무리 봐도 러시아의 Su-57로 보이는 극 중의 ‘5세대 전투기’는 영화 후반부 하이라이트 전투 장면에서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기체의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 기동을 선보인다. 영화에서 표현된 기동은 러시아에서 열린 ‘2017 MAKS’에서 Su-35가 선보인 바 있다. Su-35는 냉전 시대를 풍미한 구소련의 쌍발전투기, Su-27 ‘플랭커’를 개량한 것으로 ‘슈퍼 플랭커’라고도 불린다.

비행기는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날아가야 떠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공기가 계속 날개에 닿아 양력을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엄밀한 비유는 아니지만, 새로운 공기 분자들이 계속 들어와서 날개를 받쳐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Su-35는 MAKS에서 위쪽을 땅으로 향한 배면비행 중 공중의 한 곳에 그대로 멈춰서서 270도 회전하더니 원래 날던 방향에서 약 90도 튼 방향으로 직선 비행했다. 마치 중력이 없이 둥실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움직임이었다.

 

이처럼 비행기의 중력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을 ‘실속후 기동’이라고 한다. 비행기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낮춰서 양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속 상태를 만들고 엔진의 추력만으로 공중에 뜬 상태를 만들어서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에어쇼에서나 볼 법한 기동이지만 단순히 진기명기를 선보이자고 고안된 것은 아니다. 공중전 중 뒤쪽에 적기가 따라붙어서 내 기체를 노리는 ‘데드 식스’ 상황에 처했을 때, 실속에 가깝게 속도를 줄이면서 방향을 급히 바꾸면 뒤에 따라붙은 적기가 내 기체를 지나쳐버리게 해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만 그럴 뿐, 윙맨이 따라붙고 적기를 지속적으로 시야 안에 두도록 비행하는 실전 상황에서 써먹을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실속후 기동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에서 적기를 표적에 넣을 수 있다. 그래서 Su-35 슈퍼플랭커를 비롯해 F-22 랩터, Su-37 플랭커-F 등 최신 제공전투기들은 실속후 기동이 가능하다.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실속후 기동이 가능하려면 엔진의 추력만으로 항공기 전체를 띄울 수 있을 만큼 힘이 좋아야 하고, 엔진 추력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극 중 5세대 전투기가 무중력 기동을 선보인 이유도 해당 기체의 모델이 된 Su-57이 강력한 엔진을 갖춘 데다 3차원적으로 추력 방향을 바꿀 수 있어서 실속후 기동에 능하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의 로망, 가변익기의 마지막 불꽃
팬이라면 이미 다 짐작할만한 스포일러지만 극 후반부에 대활약을 펼치는 전통의 주역 기체도 현실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가변익기인 해당 기체의 특성을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줘서 현실성을 높였다. ‘전통의 그 가변익기’는 활주로가 망가진 상태에서 날개를 한껏 펼치고 짧디짧은 유도로로 날아오르는데, 이 장면 역시 실제 가변익기의 운용 교리를 반영했다.
가변익기는 냉전이 아니었다면 실용화되지 않았을, 군비 경쟁의 ‘사치품’이다. 가변익기가 대거 개발된 1960~1970년대는 냉전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 미소 양 진영은 본격적인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군사 계획을 수립했다.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공격당하는 곳은 공군 기지와 같은 전략 거점들이다. 따라서 수많은 항공기들이 활주로를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군용기들은 어떤 곳에서도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활주 거리가 짧아야 했으며, 그러자면 날개 면적을 넓히고 후퇴각을 줄여서 느린 속도에서도 양력을 크게 받을 수 있어야 했다.
반면 레이더가 발달하면서 적지에 고공으로 침투하기 어려워지자 레이더의 전파가 닿기 어려운 저고도에서 고속으로 침투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기류가 불안정한 저고도에서도 안정적으로 고속 비행하려면 실속에 잘 빠지지 않고 공기 흐름에도 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러한 비행에 적합한 형태가 후퇴각이 큰 직각삼각형 날개인 델타익이다. 델타익은 날개 앞부분에서 발생한 와류가 추가적인 양력을 만드는 한편 공기 흐름을 날개에 밀착시켜서 비행 안정성을 높여준다. 초음속으로 비행할 때 발생하는 충격파로 인한 항력을 줄여서 고속 비행 성능이 높아진다는 것도 장점이다.

따라서 당시 군용기에 요구된 조건을 모두 만족하려면 속도가 느린 이착륙 시에는 크고 옆으로 뻗은 날개가, 속도가 빠른 작전 중에는 좁고 삼각형에 가까운 날개가 필요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조건을 절충하려면 비행기에 두 가지 형태의 날개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날개를 주날개를 두 쌍이나 달 수는 없으니 날개 뿌리를 움직이게 해서 날개의 형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한 것이 가변익기다.

가변익기의 이러한 특성이 한껏 발휘된 기체가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그리고 이를 카피한 구소련의 Tu-160이다. 두 기체 모두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만큼 낮은 고도로 적국에 초음속 침투해서 주요 목표물이나 대도시에 폭탄을 뿌리고 오는 용도로 개발됐다. 물론 토마호크와 이스칸다르같은 미사일을 수없이 날려대는 오늘날에는 사장된 운용법이다.
결국 ‘스포일러의 그 기체’가 날개를 최대로 펼쳐서 유도로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가변익기의 존재 의의를 잘 드러낸 장치인 셈이다. 물론 현실에서나 극 중에서나 가변익기는 비싸고 정비하기 까다로운 데다 무장능력도 시원찮아서 도태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극 중에서 보여준 활약이 가변익기가 마지막으로 불태운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극 중에 등장한 기체는 널리 사용된 후기형이 아니고 극초기형인 A형이라 더 그렇기도 하다.
<탑건: 매버릭>은 ‘하늘’에 대한 로망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전편을 좋아했든 아니든, 톰 크루즈의 팬이든 아니든 거대한 스크린에서 맹활약하는 비행기들은 모든 관객의 시선을 빼앗기 충분하다. 더구나 영화에 묘사된 모습이 현용 비행기들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공군 지원자가 급증했다고 할 만큼 파일럿의 매력을 한껏 전해준 매버릭의 힘은 탄탄한 현실성 덕분이 아니었을까.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