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의 중심에는 전투기가 있다. <탑건> 시리즈는 영화 사상 현대 공중전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탑건> 1편의 주인공은 톰 크루즈가 아니라 F-14 톰캣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파일럿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디테일에 대한 꼼꼼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탑건: 매버릭>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실제 제트엔진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장면이다. 제트엔진은 고밀도로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폭발시켜서 추진력을 낸다. 현대의 터보제트엔진은 공기의 압축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엔진 앞에 팬을 부착하는데,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면 팬은 오히려 공기의 압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일정 속도를 넘어서면 팬이 아무리 빨리 회전해도 비행기가 전진하면서 밀려드는 양만큼의 공기를 엔진에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터보제트엔진만으로는 마하 2~3 정도의 속도가 한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램제트 엔진으로, 팬이 없이 엔진의 형상만으로 공기를 압축해서 작동한다. 팬이 없기에 비행기가 빨라질수록 공기 압축 효율이 높아져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저속에서는 압축이 불가능해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SR-72는 마하 2~3까지를 담당하는 터보제트엔진과 그 이상의 속도를 담당하는 램제트엔진, 두 가지 엔진을 장착하여 속도에 따라 다른 엔진을 사용한다. 영화에서 묘사한 그대로다.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과 관객의 탄성을 동시에 자아낸 ‘무중력 기동’도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지만 가능한 기동이다. 아무리 봐도 러시아의 Su-57로 보이는 극 중의 ‘5세대 전투기’는 영화 후반부 하이라이트 전투 장면에서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기체의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 기동을 선보인다. 영화에서 표현된 기동은 러시아에서 열린 ‘2017 MAKS’에서 Su-35가 선보인 바 있다. Su-35는 냉전 시대를 풍미한 구소련의 쌍발전투기, Su-27 ‘플랭커’를 개량한 것으로 ‘슈퍼 플랭커’라고도 불린다.
비행기는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날아가야 떠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공기가 계속 날개에 닿아 양력을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엄밀한 비유는 아니지만, 새로운 공기 분자들이 계속 들어와서 날개를 받쳐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Su-35는 MAKS에서 위쪽을 땅으로 향한 배면비행 중 공중의 한 곳에 그대로 멈춰서서 270도 회전하더니 원래 날던 방향에서 약 90도 튼 방향으로 직선 비행했다. 마치 중력이 없이 둥실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움직임이었다.
이처럼 비행기의 중력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을 ‘실속후 기동’이라고 한다. 비행기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낮춰서 양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속 상태를 만들고 엔진의 추력만으로 공중에 뜬 상태를 만들어서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에어쇼에서나 볼 법한 기동이지만 단순히 진기명기를 선보이자고 고안된 것은 아니다. 공중전 중 뒤쪽에 적기가 따라붙어서 내 기체를 노리는 ‘데드 식스’ 상황에 처했을 때, 실속에 가깝게 속도를 줄이면서 방향을 급히 바꾸면 뒤에 따라붙은 적기가 내 기체를 지나쳐버리게 해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만 그럴 뿐, 윙맨이 따라붙고 적기를 지속적으로 시야 안에 두도록 비행하는 실전 상황에서 써먹을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실속후 기동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에서 적기를 표적에 넣을 수 있다. 그래서 Su-35 슈퍼플랭커를 비롯해 F-22 랩터, Su-37 플랭커-F 등 최신 제공전투기들은 실속후 기동이 가능하다.
팬이라면 이미 다 짐작할만한 스포일러지만 극 후반부에 대활약을 펼치는 전통의 주역 기체도 현실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가변익기인 해당 기체의 특성을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줘서 현실성을 높였다. ‘전통의 그 가변익기’는 활주로가 망가진 상태에서 날개를 한껏 펼치고 짧디짧은 유도로로 날아오르는데, 이 장면 역시 실제 가변익기의 운용 교리를 반영했다.
따라서 당시 군용기에 요구된 조건을 모두 만족하려면 속도가 느린 이착륙 시에는 크고 옆으로 뻗은 날개가, 속도가 빠른 작전 중에는 좁고 삼각형에 가까운 날개가 필요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조건을 절충하려면 비행기에 두 가지 형태의 날개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날개를 주날개를 두 쌍이나 달 수는 없으니 날개 뿌리를 움직이게 해서 날개의 형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한 것이 가변익기다.
가변익기의 이러한 특성이 한껏 발휘된 기체가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그리고 이를 카피한 구소련의 Tu-160이다. 두 기체 모두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만큼 낮은 고도로 적국에 초음속 침투해서 주요 목표물이나 대도시에 폭탄을 뿌리고 오는 용도로 개발됐다. 물론 토마호크와 이스칸다르같은 미사일을 수없이 날려대는 오늘날에는 사장된 운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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