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인류는 기후변화에 따라 진화했다!

조조다음 2022. 6. 13. 06:30
기후 위기는 미래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화두다. 지난해 6월 공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앞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올라가면 육지 면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그린란드의 평균적인 빙상 유실 속도는 10년 전인 1992~1999년 대비 약 여섯 배 상승했고, 해수면 상승 속도는 1901~1971년에 걸친 70년의 세월에 비교해 세 배 가까이 빨라졌다고 한다. 앞으로의 지구 온난화가 빙상 유실과 해수면 상승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줄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IPCC는 적어도 2300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0.5~7m 사이로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 수치는 빙상이 녹는 정도에 따라 15m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기후는 인류의 삶과 이동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이미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기후 난민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사실 과학자들은 눈앞에 닥친 위기뿐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과거에서도 그 단서를 찾아왔다. 지난 4월 14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은 200만 년에 걸친 기후변화를 시뮬레이션해 지구 기후의 변화가 인류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규명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 어떻게 이런 연구가 가능했으며, 연구진이 새로 알아낸 사실은 무엇일까?
지난 기후 연구가 남긴 단서
일반적인 감각에서 300년 뒤의 미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먼 시간이다. 그러나 기후 과학자들은 그보다 만 배는 더 먼 과거를 조사해 왔다. 이제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0만 년간 지구 기후는 온난 다습한 플리오세(Pliocene, 지금으로부터 약 533만 년 전부터 약 258만 년 전 사이)에서 한랭 건조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약 258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 사이)로 크게 변화했다. 이러한 대규모 기후변화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던 초기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여러 화석과 고고학적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선행 연구는 또 있다. 지구는 플라이스토세에 들어선 후 지난 200만 년간 빙하기-간빙기 주기가 약 4만 년 주기에서 100만 년 주기까지 길어졌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지구 자전축과 공전 궤도가 변해 지구가 받는 태양 에너지의 양이 바뀌면서 일어난 것으로 밀란코비치 이론에 의해 설명된다. 이에 천문학적 강제력에 의한 기후변화가 고대 인류종의 계승과 분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줄곧 제시되었으나 인류 화석이 발굴된 지역에 특정된 기후변화 자료가 부족해 기후변화가 인류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슈퍼컴퓨터로 실제 기후 데이터의 빈틈을 메우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현재까지 누적된 기후변화 및 고고학 자료를 활용, 200만 년짜리 기후 시스템 모듈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결정적 단서가 빠진 과거의 기록을 보충했다. 연구진은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이용해 지구 자전축과 공전 궤도, 북반구 대륙 빙하의 발달과 쇠퇴 양상, 온실가스 농도에 지구 기후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반년에 걸쳐 조사했다. 그리고 이 자료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4가지 조상 종,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에르가스테르-호모 하빌리스가 거처한 아프리카·유럽·아시아 유적지 3245곳의 식생, 화석, 고고학 자료를 대비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는 고대 인류가 서로 다른 기후 환경을 선호했고 기후변화에 따라 서식지를 옮겨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가령 200만~100만 년 전 초기 아프리카에 거주한 인류는 안정적인 기후 조건 아래 일정 지역에서만 서식했었다. 그런데 100만~80만 년을 전후로 빙하기-간빙기 주기가 약 4만 1000년에서 10만 년 주기로 바뀌는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예전보다 더 추운 날씨가 더 오래 지속되자, 흔히 하이델베르크인으로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조상,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식량을 찾아 유럽과 동아시아까지 서식지를 넓혀갔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온 인류의 역사, 우리는? 
이 연구는 조상 종의 기후변화 적응 과정이 현생 인류의 출현에 영향을 준 사실도 확인해 주었다. 이전의 화석 연구에서 30만~20만 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분화했다는 가설이 제기된 바 있는데, 기후 시스템 시뮬레이션 자료와 고고학 증거를 대비한 이번 연구가 가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 준 것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약 68만 년 전 찾아온 빙하기 이후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 나뉘어 살게 되었다. 이 중 약 40만 년 전에 유라시아로 간 쪽에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약 30만~20만 년 전에 아프리카 쪽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분화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같은 조상에서 나온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약 30만 년 늦게 유라시아로 이동했지만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해 혼자만 현생 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다. 
30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이 이끈 기후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았다. 300년 뒤의 사피엔스는 스스로 초래한 기후변화에 무사히 적응하고 있을까? 먼 과거를 살피는 기후 과학 연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참고 자료
- Axel Timmermann et al, “Climate effects on archaic human habitats and species successions,” Nature Vol.604(2022), pp.495~501.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4600-9
- IBS, 「기후 모델과 고고학 자료로 인간 진화의 수수께끼 해결」, 2022년 4월 14일.
- 기상청, 「기후변화 2021 과학적 근거」(2021).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