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과거에 잃어버린 외계 문명이 있을까요?

조조다음 2022. 6. 8. 06:30

우리는 외계 문명을 생각할 때면 흔히 광대한 우주 공간에 눈을 돌립니다. 머나먼 행성에까지 말이죠. 하지만, 이토록 광대한 차원은 공간 말고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무시하고 사는 차원이죠.
시간입니다.


지난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이 지구에, 다른 문명이 존재했을 수 있을까요? 기술이 발달한 지구의 토착종이 번성했다가
멸종한 건 아닐까요? 그리고 남은 유해와 유물들이 우리 발밑에 묻혀 있는 건 아닐까요? 이에 대해 과학이 답해야 할 건 무엇이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생명체는 40억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했습니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단세포 생물이었다가 약 5억 4천만년 전 캄브리아 대폭발이 동물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토착 외계인 친구들이 나타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네요. 어디에 가면 이들을 볼 수 있고 어떤 걸 찾을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찾아볼 수 있는 문명은 하나 뿐이네요. 우리요.


해부학적 현대인은 약 30만년 전 발생했고 수렵채집인들 몇몇이 뭉쳐 모여다니면서 천천히 전 세계로 퍼져나갔을 겁니다. 발전은 더뎠고 생활 양식도 크게 변하지 않았죠. 그래도 획기적인 발명이 군데군데 나왔을 겁니다. 그리고 약 1만년 전 농업 혁명이 우리의 생활 양식을 영원히 바꿔버렸습니다.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고 기술도 발전했죠. 우주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문화와 도구만 있는 동물에서 벗어나 행성을 통째로 갈아엎었으며 숲을 베어내고 도시와 신에게 바치는 사원을 지었습니다. 숨막힐 정도로 빠른 속도와 큰 규모로요. 그리고, 약 300년 전에 우리는 산업 종족이 되었고 우리의 머릿수는 다시 한 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 우리가 행성에 미치는 영향도 똑같이 늘어났습니다.


우리의 30만년 역사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97%의 시간 동안 수렵채집인이었고 2.9%동안 농부였으며 0.1%동안 산업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지구에 갓 들어온 신참입니다. 지질학적인 시간 규모에서는 제아무리 단단한 것도 부서져 버립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대지는 네게브 사막입니다.  180만년 된 메마른 땅이죠. 더 오래된 건 모두 먼지로 바스라지거나 뒤집힌 채로 땅 아래 묻히거나 얼음 아니면 바다에 덮여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 인류세는 수백만 년 내로 겨우 몇 센티미터 두께의 층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이전에 외계인들이 있었고 우리와 똑같이 세 단계를 거쳤다면 어떤 걸 남겼을까요?
우리 자신을 거울삼아 본다면 이 토착 외계인들에 대해 뭘 알아낼 수 있을까요?

수렵채집 외계인
사실 우리가 알기로는 지난 몇백만 년 동안에도 수렵채집 외계인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우리의 조상들과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사촌들이 있었고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거나 영원히 찾지 못할 이들도 많을 겁니다. 이들이 남긴 것에는 신체의 일부와 무기와 도구, 예술품도 있습니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존재했고 꽤나 가까운 시대에 살았음에도 그렇게 조금 남기고 간 걸 보면 외계인들이 정말 있었을 법도 합니다.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요. 말을 할 수 있고, 도구와 불을 사용하고 문화와 예술이 있던 종족이요.


지난 2백만년간 대부분의 인류종은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습니다. 따라서 이 외계인들이 그 이상으로 기술 발전을 하지 못했다면 수많은 종과 수많은 문화가 있었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남은 유물은 생물학적, 지질학적 과정을 거쳐 사라져갔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수천년이 지난 후엔 아예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화석은요?
공룡 편에서 자세하게 다뤘지만 화석화는 정말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간단히 말하자면 십만년 전의 지층까지 파내도 쓸만한 화석은 한 줌밖에 안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계인의 화석을 그저 못 보고 지나쳐버렸을 가능성도 있으며 그 화석이 있다 해도 우리가 외계인인 걸 몰라보면 소용 없습니다.

농업 제국 외계인 다시 인류로 가 보자면 농업 사회에선 땅에 묻혔다가 발굴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이 남습니다. 사용하는 도구들이 정교하고,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먹여야 할 입이 너무 많아서 유물도 많이 남기 때문입니다. 농업 이후 인류는 기술을 분야별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와 항해부터 건축과 정치까지요.


수천년에 걸쳐서 도시 국가는 왕국으로, 제국으로 변했고 일부는 천 년이 지나서야 멸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지은 건물과 기념물은 아직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수천년이 더 지나도 그 흔적은 남아 있을 겁니다. 어떤 것은 땅에 그려진 윤곽으로만 남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알아볼 정도는 될 겁니다.


피라미드는 육중한 석회암을 쌓아놓은 덩어리라 수십만 년이 지나도 거기 그대로 서 있을 겁니다. 또, 농업 제국 시대에 산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화석과 유물이 훨씬 더 많이 발굴되리라 기대해 볼 만 합니다. 수백만 년 동안은 남아있을 겁니다. 따라서 농사 짓는 외계인은 최근 수백만 년 이내에는 확실히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남기고 간 뭔가를 찾았을 테니까요. 그래도 이 전으로 수억 년의 시간이 남습니다.


복잡한 생물의 시작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시간대죠. 이 시기에 산업사회 전 단계의 외계인들이 있었고 고대 로마와 중국 수준의 제국을 세웠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의 도구와 개량된 금속까지도 썩어문드러졌을 겁니다. 물길을 파내고 숲을 베어내고 도시를 만들었어도 그 흔적을 자연물과 구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어쩌면 한때는 두족류가 다스리는 제국이 늪과 호수 아래 나무와 돌로 된 멋진 도시를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국의 기술자들은 땅을 범람시켜 도시를 만들고 시인들은 색깔의 언어로 쓴 시를 낭송했을지도 모릅니다. 산업화는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쩌면 사회가 너무 안정적이고 판에 박은 모습이었거나 그럴 만한 기회가 없었던가요. 운석 충돌이나 전염병, 빙하기 같은 큰 일이 하나만 와도 문명이 삭제되기 충분했을 겁니다. 신전은 산산이 부서지고 물렁한 몸은 썩어 사라졌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문명에 대한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길어 봐야 수백만 년이 지나면 그들이 일궈놓은 건 눈 녹듯 사라졌을 겁니다.

산업화 토착 문명
산업화된 문명은 어떨까요? 현대의 인류처럼요. 인류가 갑자기 멸종했다고 해 봅시다. 전염병이나, 감마선 폭발이나 아무튼 그런 거 때문에요. 뭐가 남을까요? 우리가 행성에 주는 영향은 선조들 때와 자릿수부터 다릅니다. 야생 동물의 대멸종이 화석으로 기록될 것이고 인류와 떼놓을 수 없는 동물의 화석은 터질듯이 많을 겁니다. 쥐나 소, 돼지나 닭처럼요.


조상들이 만든 구조물과 마찬가지로 고층 건물과 도로, 하드 드라이브 등은 수천 년 이내에 모조리 바스라져 먼지가 될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여기저기에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갑작스런 종말 이후 몇백만년 동안은 우리가 있었다는 뚜렷한 단서가 남을 겁니다. 사실 산업 사회에서 생기는 부산물 정도면 수억 년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막대한 양의 인공 비료는 지구상의 질소 흐름을 바꾸며 토양에 그대로 침전되고 있습니다. 금속과 희토류의 채굴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천연자원을 고갈시킵니다. 해류를 타고 흐르는 플라스틱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수억 년까지도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붕괴를 일으키는 방사성 원소도 있습니다. 이 원소들이 실험실이나 무기에 들어가면 자연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농축됩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 짧은 산업 시대동안 대기의 이산화탄소 구성비를 바꿔버렸습니다.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태우고 바다의 산성도를 높이고, 기타 등등으로요. 우리는 이미 지구의 기록에 표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외계 산업문명의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상한 화학물질 층도, 채굴된 물질도 없습니다. 방사선이 검출되는 층도 없습니다. 있었다면, 한때 거대한 국가들이 핵전쟁이 벌였다는 증거일 테죠. 대멸종이나, 화석에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는 분명 보이지만 자연 말고는 원인이 될 만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여기서 흥미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산업 문명이 자멸할 정도로까지 환경을 파괴한다면 그 문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문명이 된다면 지질학적으로 남는 흔적은 별로 없을 겁니다. 옛 산업 문명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다 멸종했다면 그 문명에 대해 알 길은 거의 없을 겁니다.


어떤 경우든, 수억 년의 시간이 지나면 이런 특성들은 미약해지고 무시되거나 자연적인 것으로 해석될 겁니다. 만약 산업화된 외계인의 사회가 2억년 전부터 존재했고 10만년동안 존속했다면 인류의 산업 사회보다 300배 더 긴 시간임에도 지질학적인 기록에서는 금방 잊히기 쉬운 시간입니다.


뭐가 됐든, 이건 다 추측입니다. 모르는 영역을 상상으로 메꾸는 걸 다 아는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되겠죠. 반대되는 증거가 없으니 일단 있었다고 보는 건 반드시 피해야 할 착각입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광대한 시간 속을 들여다보자면 광대한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외계인은 없는 듯 보입니다. 어쩌면 우린 우주 속에 홀로이고 늘 그래왔을지도요. 언젠가는 다른 이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교훈 하나는 있습니다. 우리의 문명이 유지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심하지 않으면 우린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것. 부디, 몇백만 년 뒤에 다른 문명이 우리의 화석층을 연구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다시 볼 수 없는 과거가 이렇게나 많다니 절망스럽네요. 적어도 여러분이 관심 있는 것들은 못 보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이나 영화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