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돼지 신장, 인체 면역거부반응 극복… ‘이종 간 이식’ 시대 열리나(KISTI)

조조다음 2021. 12. 29. 06:30

오래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 온 돼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Pig 05049>라는 책에 따르면, 돼지가 들어간 물건은 비누, 도자기, 샴푸, 사포, 치약, 화장품 등 무려 180여 가지가 넘어간다.
그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몸속 ‘장기’다. 돼지는 사람과 오랜 시간 같이 생활했기에 치명적인 감염원을 보유할 가능성이 낮다. 장기 크기도 사람의 장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종 간 장기 이식에는 ‘면역 거부’라는 큰 장벽이 있다. 이식받은 신체가 새 장기를 침입자로 간주하고, 공격해 파괴하는 현상이다. 같은 인간끼리의 장기 이식에서조차 면역 거부 반응은 종종 일어날 정도로 이식의 난이도를 높이는 주범이다.
때문에 이종 간 장기 이식은 아직까진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최근 면역 거부 반응을 해결했다는 소식이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로이터, 뉴욕타임즈, BBC 등 외신들은 최근 미국 뉴욕대 랑곤헬스메디컬센터에서 날라온 희소식을 전했다. 이식연구소 소장인 몽고메리 박사 연구팀이 돼지 신장 이식에 성공했다는 것.
이종 간 신장 이식 대상은 신부전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다. 연구팀은 지난 9월 환자에게 이식한 돼지 신장이 3일간 문제없이 제 기능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우려했던 면역 거부 반응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팀이 신장 이식에 사용한 돼지는 갈세이프(Galsafe). 이는 지난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식용 및 의약용으로 승인한 유전자 조작 동물이다. 
그렇다면 갈세이프와 일반 돼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갈세이프는 인공적으로 알파 갈(α-GAL)이라는 당 성분을 없앤 돼지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돼지 세포에 있는 알파 갈을 침입자로 인식하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안전해진 갈세이프의 신장을 외부에 둔 채 환자의 혈관과 연결했다. 이후 3일간 상태를 살펴본 결과, 면역거부반응 없이 신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실험의 한계는 분명하다. 직접 환자 몸속에 이식한 것이 아니며, 실험 시간 역시 3일에 불과하다. 때문에 후속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다. 연구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짚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실험은 “만성적 장기부족 해결에 큰 획을 그은 것” 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2019년 기준,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4만252명이지만, 총 이식 건수는 5,770건에 지나지 않는다.
장기부족을 해결할 방법으로는 줄기세포를 활용한 맞춤형 장기 제작, 세포 기반 바이오잉크로 인공장기를 제작하는 바이오프린팅 등이 있다. 그러나 기술적, 경제적 측면에서 아직까진 이종 간 이식이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이에 많은 국내외 연구진들이 영장류를 대상으로 많은 실험을 진행해 왔다. 국내에선 서울대 의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이 돼지의 췌도와 각막을 성공적으로 원숭이에게 이식한 경험이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관련 실험에 도전했지만 WHO 기준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임상 승인을 받지 못해 대기 중인 상태다.
이에 다소 한계가 있더라도, 이번 연구의 성공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 이종 간 이식이 유의미한 치료법이 될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