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과학을 알면 스키 더 잘 탈 수 있다! (KISTI)

조조다음 2013. 12. 14. 06:40

 

 

태연과 엄마, 아빠는 지금 막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스키장에 도착했다. 기말고사 평균 80점을 넘으면 스키장에 데려가 주겠다는 아빠의 말에 난생처음 쌍코피가 터지도록 밤샘 공부를 거듭한 끝에 이룬 쾌거다! 새하얀 슬로프, 스키장 가득 울려 퍼지는 신나는 노랫소리, S자 턴을 하며 우아하게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어들,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츄러스와 케밥의 냄새…. 태연은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야호!! 평균 80점이 이토록 행복한 점수인 줄 정말 몰랐어요~.”

“딸아, 나도 네가 그토록 높은 점수를 쟁취할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구멍 난 생활비는 가슴 아프지만…, 암튼 신나게 놀아보렴~.”

“제가 공부는 못해도 운동신경은 짱이잖아요. 이깟 스키, 10분이면 마스터 한다니까요?”

“에이, 스키는 운동신경만 가지고는 잘 타기 힘든 운동이야. 과학 원리를 이해하면 훨씬 더 빠르게 스키를 배울 수 있지. 다칠 위험도 적어지고 말이야.”

“아빠, 여기까지 와서 또 공부타령이에요? 80점 아빠의 영광을 드렸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세요. 그건 욕심이에요, 그것도 과욕!”

“진짜야. 우선 얼음의 특성을 이해해야 해. 왜냐, 스키가 눈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얼음의 특성 덕분이거든. 얼음 표면의 물 분자들은 얼음 내부의 물 분자와는 다른 형태로 존재해. 얼음 내부에서는 물 분자들이 각 방향으로 서로 연결돼 있지만 표면의 물 분자는 위쪽으로는 다른 분자와 연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단다. 그래서 영하의 온도에서도 얼음이 되지 못하고 액체 상태와 비슷한 구조를 유지하게 되지. 때문에 스키가 눈 표면을 잘 미끄러질 수 있는 거란다.

“헛, 대박 신기해요! 그런데 아빠,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눈 분수는 뭐에요? 차에서 막 눈을 뿜어내요!”

“아, 제설기 말이구나. 직접 눈을 만들어 뿌리는 건 아니고 5마이크로미터(μm, 100만분의 1m) 이하의 작은 물방울을 분사하는 기계란다. 고압의 제설기에 있던 작은 물방울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압력의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가면 급속 팽창을 하는데, 이때 추운 날씨까지 겹쳐지면 결정핵을 만들게 되지. 여기에 물방울들이 달라붙으면 순식간에 얼면서 인공눈이 탄생한단다. 제설기가 없었다면 11월에 스키장이 개장할 수도, 실내 스키장이 생겨날 수도 없었을 거야.”

“뭐야, 그럼 스키는 눈이 아니라 물 위에서 즐기는 스포츠잖아요. 눈은 물로 만든 인공설이고, 스키가 움직이는 것도 마찰열 때문에 생긴 물 덕분이라면서요.”

“하긴, 그렇게 되는구나.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스키 과학 딱 하나만 더 알고 가자. 스키는 상당히 위험한 운동이야. 경사면을 고속으로 쌩쌩 달려 내려오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거든. 물론 다치지 않게 ‘잘’ 넘어지는 강습을 받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알아두면 좋겠지?”

“정말 넘어지지 않는 방법이 있어요?”

“그럼, 관성을 이용하면 된단다. 관성은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정지하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하는 성질을 뜻하지. 사람의 무게중심도 마찬가지야. 평지에 서 있을 때 사람의 무게중심은 배꼽 아래 약 2.5cm 지점에 위치하는데, 슬로프를 내려올 때도 관성에 의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으려고 한단다. 그런데 다리는 벌써 슬로프 아래로 쭉 내려가 버리거든. 그렇게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기 때문에 자꾸 뒤로 넘어지게 되는 거지. 그래서 슬로프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릎을 굽혀 무게중심을 낮추도록 해야 해. 그렇다고 상체를 앞으로 너무 숙이면 등 근육이 굳어서 회전을 할 수 없으니 주의하고. 스키 부츠가 앞으로 구부러져 있는 건 알지? 그 각도와 상체 각도를 평행하게 맞추는 게 기본 자세란다. 알겠니?”

“무릎은 굽히고 상체는 세우라고요? 그걸 어떻게 해요, 난 못해! 암튼!! 지금부터 전 운동실력은 꽝이지만 과학 실력은 짱인 아빠의 시범 스킹을 관람하겠어요. 완벽한 자세 기대할게요. 자 고고씽~.”

태연,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아빠를 슬로프 아래로 살짝 밀어버린다. 얼마 못 가 관성에 따라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더니 다리가 앞으로 쭉 빠지면서 제대로 꽈당 넘어지는 아빠.

“아빠아! 그러니까 과학 실력을 현실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실습도 하셨어야죠! 스키를 글로만 배운 결과예요. 홍홍홍~.”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