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고달픈 직장인의 애환, 증후군으로 나타난다? (KISTI)

조조다음 2013. 7. 25. 05:50

 

 

 

“제주에서 오 차장은 고독해졌다고 했다.”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다뤄 많은 공감을 얻은 웹툰 ‘미생’이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바둑만 바라보다 입단에 실패한 주인공 ‘장그래’와 그가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한 무역상사의 이야기다.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어 독자들에게 위로와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 매 회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게 특징인데, 143수에는 장그래의 상사인 오 차장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대목에서 ‘고독해진 오 차장’이 강조됐다. 그가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온 가족이 함께 3년 만에 제주로 떠난 여행에서 묘하게 벌어진 자식과의 틈을 느끼며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하는 헛헛하고 외로운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오 차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생’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일에 매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언제고 닥치게 될 상황일지 모른다. 오 차장처럼 자신의 삶보다 직장이 우선이고 일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과잉적응 증후군’의 결과가 고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중독증(워커홀릭)이라고도 불리는 이 증후군은 가족이나 고향 친구보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집안 행사도 자신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귀찮아한다. 자신과 가족의 욕구를 제쳐둔 채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직장이나 일이 사라진 순간 몰려올 공허감은 상상 이상이다. 매 순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가정이나 인간관계의 틈을 매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오 차장처럼 고독한 시간을 맞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인이 자신의 의지로 일에 매달린 게 아닐 수 있다. 가족이 더 잘 살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게 일중독증이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일중독증이 되는 현상을 ‘슈퍼직장인 증후군’이라고 한다. 과잉적응 증후군과 달리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공포 때문에 일에 더 신경 쓰는 경우다.

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일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에 빠져서 만족감을 느끼는 워커홀릭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밀려나지 않으려 많은 일을 떠안는 사람들에게는 신체적인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만성피로 증후군’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늘 피로하고, 일할 때 두통이나 통증도 자주 생기고, 업무 집중력도 떨어져 실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만성피로 증후군은 극심한 피로나 수면장애, 두통, 각종 통증, 집중력 및 기억력 감퇴, 소화장애 등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일상적인 증상이 많아 초기에는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 정신적 스트레스나 압박감도 함께 찾아올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증후군이 보이면 검사와 상담을 받고, 검사 결과에 따라 약물 치료나 인지행동치료 등을 받는 게 좋다. 또 자전거 타기나 달리기, 수영 같은 유산소 운동도 만성피로 증후군에 도움을 준다.

현대인이 마주하기 쉬운 증후군은 이뿐이 아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을 겪는다.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우울증’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증후군은 우울증을 숨기고 웃을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발생한다.

늘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의 특성상 어떤 고객이든 무슨 상황이든 웃어야 하지만 마음속 온갖 감정을 억누르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 증후군이 심해지면 자살을 시도하게 될 수도 있고, 그대로 방치하면 ‘정신가출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증후군을 얻을 수도 있다. 회사도 집도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이 계속되는 것이다.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을 극복하려면 우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거절이 필요한 경우에는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취미나 운동을 시작하고, 과중한 업무에서 떠나 여행을 떠나는 등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최후의 수단은 전문의에게 상담 받고 약물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입사 초년에 있는 직장인들이 겪는 증후군으로는 ‘파랑새 증후군’이 대표적이다. 한 직장에 안주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직장인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데,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현상을 말한다.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쓴 동화 ‘파랑새’에서 따온 이름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파랑새를 찾기 위해 험난한 여행을 하는 꿈에서 깬 다음 그토록 찾던 파랑새를 집 안에서 찾게 되는데, 이 내용을 요즘 현실에 비유한 것이다. 2011년 삼성경제연구소는 학력 수준과 맞지 않는 ‘하향 지원’을 하거나, 전공과 적성보다는 일단 취업하고 보자는 ‘묻지마 지원’을 한 신입사원일수록 파랑새 증후군을 더 잘 겪는다고 발표했다.

이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 불만 가득한 나날을 보내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회사에도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 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직장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 실천해보는 게 좋다.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일에 대한 재미를 찾고, 목표를 공유하고 성장을 자극해 줄 사람을 찾으며, 직장에서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동료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현대인이 겪게 되는 각종 증후군들은 바쁜 사회 속에 적응하면서 나타나게 된 ‘마음의 병’이다. 남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과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되면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계속 사람들을 떠밀고 있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고 모두의 재능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된다면 이런 증후군들에 덜 시달려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잠시 멈춰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 비로소 보이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챙기라는 게 어쩌면 미생 143수에서 던지는 교훈일지 모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