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제철 음식은 정말 산란기에 더 맛있는 걸까? (KISTI)

조조다음 2012. 11. 28. 09:55

 

 

 

11월 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한데 금세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왔다. 추운 날이 계속되면 우리 몸은 다른 계절에 비해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잠을 오래 자도 몸이 찌뿌둥하고 무기력해지기 쉽다. 혈압 상승과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 그 원인으로, 면역력도 약해지기 쉬워 자칫 방심하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보충이 필수적이라고 권한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음식으로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각종 필수영양소가 풍부한 제철 음식이 제격이다. 겨울 제철 음식으로는 굴(9월~12월), 대하(9월~12월), 해삼(10월~11월), 과메기(11~1월), 대게(2~3월)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사시사철 살아가는 생물인데 왜 제철. 가장 맛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걸까?

보통 음식마다 제철이 다른 이유는 산란기와 관계가 깊다. 산란기를 앞두고 먹이를 충분히 섭취해 생물들의 몸에 살이 오르고 각종 영양분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대하는 산란기인 9~11월에 맛과 영양이 가장 풍부하다. 꽃게의 경우 제철이 봄, 가을로 두 번인데 봄에는 암게의 알이 가득 찬 산란기이고, 가을에는 숫게가 살이 통통히 오르는 시기여서다. 2∼3월에 많이 잡히는 대게도 산란기에 가장 맛이 좋다.

하지만 모든 제철 음식이 산란기에 가장 맛이 좋은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산란기에는 알이 있어 더 맛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가을 별미로 꼽히는 전어는 그 반대다. 산란기인 4월~5월과 산란을 끝낸 이후인 7월~8월에는 기름기가 적어 맛이 없지만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하는 9월~10월 즈음이면 살이 오르고 지방도 풍부해진다. 11월 이후에는 뼈가 억세지기 때문에 9월~10월이 전어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꽁치의 산란기는 5월~8월. 하지만 꽁치의 제철은 10월~11월로, 이 시기 꽁치 몸의 지방성분이 20%나 돼 가장 맛이 좋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꽁치에는 두뇌 발달에 좋은 DHA는 물론 비타민 A, E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꽁치를 이용한 대표적인 가공품으로 11월~1월이 제철인 과메기도 있다.

과메기는 꽁치를 영하의 온도에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발효·숙성시켜 만든다. 꽁치로 만들었지만 영양분은 오히려 꽁치보다 많다. 과메기를 숙성하는 과정에서 노화현상과 뼈 약화를 억제하는 핵산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DHA, EPA, 오메가-3 지방산도 자연 상태의 꽁치보다 많이 들어있다. 칼슘도 다량 함유돼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은 먹거리다.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은 5월~8월이 산란기로, 가을에 살이 오르기 시작해 11월~2월이 가장 맛이 좋아지는 ‘제철’이다. 글리코겐 함량도 겨울이 여름에 비해 10배 이상 많아진다. 때문에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R자가 없는 달(May, June, July, August : 5~8월)에는 굴을 먹지 않았다.

5월~6월이 산란기인 낙지도 찬바람 부는 9월~11월이 제철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영양분 섭취를 가장 활발히 하기 때문으로, 산란기에는 오히려 영양가가 떨어진다. 때문에 ‘오뉴월 낙지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도 있다. 산란기를 앞둔 3월~4월이 제철로 알려진 주꾸미도 오히려 가을에 제철음식으로 꼽힌다. 산란기에는 영양분을 모두 알로 보내지만, 가을 주꾸미는 겨울을 앞두고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주꾸미에는 타우린이 오징어보다 5배 정도 많이 들어 있다. 자양강장제 성분으로 많이 쓰이는 타우린은 시력 강화에도 좋으며 당뇨병 예방, 면역력 강화 등의 기능이 있다.


5월~7월이 산란기인 해삼도 10~11월이 제철이다. ‘바다의 인삼’으로 불리는 해삼은 산란 후 수온이 섭씨 20도 이상 되면 암반에 붙어 먹이를 섭취하지 않고 하면(夏眠)에 들어간다. 이 시기 해삼은 몸이 수축되면서(체중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딱딱해지는데다, 부유물이 뒤덮여 해삼을 잡고 싶어도 잡기 힘들어 진다. 하면은 약 100일간 이어지며, 하면이 끝나는 가을부터 맛이 좋아지기 시작해 동지 전후에 가장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동서남해안에 대표적으로 서식하는 돌기해삼은 아미노산 18 종류, 인, 철, 요오드, 아연, 셀렌, 바나듐, 망간외의 다양한 원소, 비타민 B1, B2, B3, E, K 등 다종류의 비타민류, 타우린, 항산화효소인 SOD 등의 생물 활성 성분을 포함한 50종 이상의 천연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해삼은 동물성 식품 중에서 보기 드문 알칼리성 식품으로 열량이 23kcal, 콜레스테롤 1mg으로 소고기의 1.4%에 불과하다. 때문에 다이어트식으로도 각광받는다.

늦봄~여름이 산란기인 홍합은 10월~12월이 제철이다. 산란기에는 맛이 떨어지는데다, ‘삭시토닌(Saxitoxin)’이라는 독소가 들어있기도 하다. 삭시토닌은 마비, 언어장애, 입마름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식중독의 위험도 있다. 때문에 홍합은 맛도 맛이지만 안전을 위해 겨울철에 먹는 것이 안전하다.

이처럼 산란기에 맛있는 제철 음식도 있지만 산란기에 오히려 피해야 할 제철 음식도 있다. 제철 음식은 영양분의 함유량이 가장 많을 때여서 맛이 좋으며 수확량이 많아 가격도 저렴하다. 제철 음식, 제대로 알고 섭취한다면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날 수 있을 것이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