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로봇이 싸이의 ‘말춤’ 출 수 있을까? (KISTI)

조조다음 2012. 8. 21. 08:05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로 공개되면서 공전의 인기를 얻고 있다. 마치 말을 타는 듯한 자세로 깡충거리면서 두 팔을 휘 젓는 ‘말춤’은 이미 세계인의 춤이 됐다.

말춤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한 동작으로 구성돼 있지만 곰곰히 분석해 보면 은근히 고난도의 동작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춤을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휴보나 일본의 아시모 같은 인간형 로봇이 출 수 있을까.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양 팔을 앞으로 모으면서 말고삐 잡은 자세 그대로 흔들다가 틈을 보아 한 팔씩 하늘을 향해 들고 뻗어 올리고, 한쪽 씩 무릎을 교대로 올리면서 연속해서 깡충깡충 뛰어 올라야 하는데, 사람에게나 쉽지 로봇이 하기엔 어지간한 제어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 뜬금없이 춤 동작을 설명하느냐 하면, 춤이야 말로 로봇의 운동성능을 표현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춤을 출 수 있어야만 인간형 로봇이 실생활로 들어오는 데 필요한 난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기계덩어리가 사람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중심을 잡고 쓰러지지 않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로봇 발전 단계에서 큰 관문이었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이미 여러 종류가 개발돼 있다. 서기 2000년 일본 혼다 자동차가 인간형 로봇 ‘P’ 시리즈 개발을 거쳐 ‘아시모’를 발표했는데, 이전까지는 두 발로 걷는 기계 메커니즘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형 로봇은 ‘보행기능’을 보여준다는 사실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 로봇이 걸을 때는 상체의 움직임을 최소로 줄이고, 가급적 무게 중심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로봇이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도와 살아가라면 ‘제대로 된’ 운동능력을 갖춰야 한다. 두 다리로 옆 건물까지 뛰어가면서 동시에 손으로는 가방 속을 뒤져 서류뭉치를 꺼낼 수 있어야 주인의 말을 듣고 심부름을 다녀 올 수 있다. 그러려면 상·하체가 제각각 다른 일을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기능, 즉 제대로 된 ‘전신제어(Whole body control)’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작이 바로 춤이다. 로봇은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무게중심이 흔들려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춤은 구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인간형 로봇의 전신제어 기능을 선보인 기업 또는 연구기관은 전 세계를 통틀어 2~3곳 밖에 되지 않는다.

2004년 개봉된 영화 ‘아이 로봇’을 살펴보면 인간보다 운동능력이 뛰어나 빼어난 무술실력을 선보이는 로봇이 등장한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운동능력이 사람 수준에 근접한 ‘춤추는 로봇’은 국내에서도 이미 개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국내에서도 로봇 춤을 통해 이런 전신제어 기능을 개발해 낸 곳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간형 로봇 ‘휴보’를 개발한 대전 유성구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휴보센터)가 그곳이다. 춤추는 로봇 ‘휴보2’는 마치 비보이(B-Boy)처럼 빠른 동작으로 격렬한 춤을 춘다. 지난 2009년 국내 최초로 달리기에 성공해 큰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로봇이다.

연구현장을 찾아가 살펴본 휴보2는 전문 비보이(B-Boy) 같은 느낌을 줬다. 노트북으로 무선랜을 통해 작동 지시를 내리자 휴보는 두 발로 스텝을 밟으면서 동시에 ‘쉭쉭’ 하는 기계음에 맞춰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격렬한 동작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왼발을 허공에 들고 골반을 비트는 고난도 춤동작도 흔들림 없이 능숙하게 한다. 한 다리를 들아 앞으로 내 뻗으면서 반대쪽 손을 동시에 휘저으며, 남은 한쪽발로 땅을 딛고 살짝 뛰어 보이는 등 고난도 춤 동작도 무리 없이 해치운다.

이런 전신제어 기능을 개발했다는 것은 로봇 공학기술로 볼 때 큰 진보다. 로봇이 춤을 추었다는 뜻은 팔다리와 상체 하체를 제각각 빠르게 움직이는 중에도 무게중심을 정확히 맞춰 쓰러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가장 고난도의 동작을 하는 로봇은 일본 혼다자동차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아시모’와 일본산업기술연구소(AIST)의 로봇 ‘HRP-4c’로, 고난도의 무용까지 가능하다. 일본보다 2, 3년 뒤지긴 했지만 한국도 마침내 숙제를 풀었다.

사실 국내에 ‘춤을 출 수 있다’고 주장한 로봇은 한 종류가 더 있었다. 지난 200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라’가 그것이다. 당시 원더걸스의 ‘텔미’ 춤에 맞춰 춤을 추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휴보나 아시모, HRP 시리즈와 비교하면 중심이동 폭이 작아 진정한 전신제어 기능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비슷한 기능이라면 휴보 등 다른 로봇도 태극권 시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지금까지 인간형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전신제어 기능이 완성되면 인간의 움직임을 대부분 따라할 수 있게 된다. 뛰어난 인공지능만 확보된다면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스스로 판단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휴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70% 이상 흉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보다 축구를 잘 하고, 전문 무용수 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춤을 추는 로봇은 언제 쯤 등장할까. 휴보를 만든 오준호 교수는 “로봇의 플랫폼(기계장치)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우리 팀은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10여 년 안에 인간보다 축구를 더 잘하는 로봇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미래에 인간형 로봇이 우리 삶으로 들어올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