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코를 손처럼 쓰는 코끼리, 목 길이만 2m가 넘는 기린, 30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낙타 등, 동물들은 저마다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특징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들의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게 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풀어야 할 비밀이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 코끼리와 기린의 신체적 비밀에 대해 새롭게 밝힌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됐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짝짓기를 위한 박치기 싸움 때문?
중국과학원 척추고생물학 고인류학연구소 덩타오 박사가 이끈 국제 연구팀은 기린의 목이 긴 이유가 짝짓기를 위한 박치기 싸움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중국과학원 척추고생물학 고인류학연구소 덩타오 박사가 이끈 국제 연구팀은 기린의 목이 긴 이유가 짝짓기를 위한 박치기 싸움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지난 1996년 중국 북서부 신장의 준가르 분지에서 발굴된 화석 ‘디스코케릭스 셰즈(Discokeryx xiezhi)’다. 이 화석은 약 1천 7000만 년 전에 생성된 바이오세 초기 지층에서 발견되었으며, 두개골과 목뼈가 잘 보존돼 있었다. 디스코케릭스 셰즈는 기린과의 조상 격인 동물로 알려졌는데, 현재의 기린과 달리 목 길이가 1m에 불과했다. 또 두개골 부분에 원반 형태의 단단하고 두꺼운 뿔이 있었고, 척추도 유난히 두꺼웠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디스코케릭스 셰즈가 머리를 이용해 박치기를 했을 것이라고 보고, 소, 양, 사슴 등 다른 동물의 뿔 형태와 비교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다른 동물보다 기린의 뿔이 더 두껍고 머리뼈와 척추 사이 관절이 가장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디스코케릭스 셰즈의 이런 머리 형태가 다른 개체와 서로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며 싸우기에 적합한 구조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또 박치기 싸움을 할 때 목이 길면 길수록 상대방에게 더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기린의 목이 점점 길어지는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동안 기린의 긴 목은 더 높은 곳의 잎을 먹기 위한 먹이 경쟁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먹이 경쟁이 아닌 짝짓기 경쟁 때문이라는 이번 연구결과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이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멍진 박사는 “디스코케릭스 셰즈는 넓은 초원에 살았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살았는데, 이런 환경은 매우 불안정하므로 생존을 위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수컷들의 경쟁이 심해지며 머리 박치기와 같은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코끼리의 만능 코, 피부 주름 덕분
한편 코끼리가 긴 코를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비밀은 피부의 주름 덕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 앤드루 슐츠 박사팀과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 공동 연구팀은 코끼리의 코 윗부분의 주름이 아랫부분보다 더 유연하게 늘어나서 코로 섬세한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편 코끼리가 긴 코를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비밀은 피부의 주름 덕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 앤드루 슐츠 박사팀과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 공동 연구팀은 코끼리의 코 윗부분의 주름이 아랫부분보다 더 유연하게 늘어나서 코로 섬세한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에 서식하고 있는 사바나 코끼리 두 마리를 대상으로 2m 떨어져 있는 곳에 간식을 잡게 했다. 그리고 코끼리가 코를 뻗어 간식을 집는 장면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뒤, 영상을 보며 코끼리의 코가 어떻게 늘어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간식을 집는 순간 코의 끝부분이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휘어졌는데, 이때 코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피부 주름이 펴지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유연성은 약 15% 정도 차이가 났고, 동물원에 보관된 코끼리 사체의 코를 확인했을 때 코 윗부분에 주름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코끼리가 코를 길게 늘일 때 코의 끝부분부터 먼저 늘리기 시작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사람이 혀를 내밀 때처럼 코를 균일하게 뻗을 것이라는 연구진의 추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코를 길게 뻗을 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코끼리의 코 부분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끝부분에는 1ℓ의 근육이 있고 입과 가까운 쪽에는 11~15ℓ의 근육이 있다. 균일하게 뻗게 되면 입과 가까운 쪽을 펼 때 약 13배나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따라서 코끼리는 마치 망원경을 길게 빼는 것처럼 코의 가장 끝부분을 먼저 늘리고 뒤이어 뒷부분을 당기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코끼리 코는 나무를 쓰러뜨리거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해 단단하면서도 작은 풀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하다”며,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동물들의 움직임을 본따 부드럽게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연구에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글: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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