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직장에서 오후 근무 시간 중 무조건 30분씩 낮잠을 자라고 하면 어떨까? 누군가는 잠깐의 낮잠으로 오후의 몽롱한 기운을 쫓아낼 수 있다며 좋아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커피 한 잔으로 잠 깨우고 일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저마다 판단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낮잠이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그는 한밤중에 오래 자는 대신 수시로 낮잠을 잤다고 한다. 주로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는데, 오른손에는 쇠로 된 베어링을 쥐고 그 아래쪽 바닥에는 냄비를 뒤집어 두었다. 깊게 잠들어 손힘이 풀리면 베어링이 냄비 위로 쾅 떨어지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에디슨이 꿈에서 얻은 착상을 옮겨 적었다는 어딘가 뻔한 흐름의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로 낮잠이 창의력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에디슨이 신기한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인 건 아닐까?
깨어 있음과 잠듦 사이의 여러 단계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한 신경과학 연구는 에디슨의 낮잠 기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프랑스 국립 보건의학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a santé et de la recherche médicale, Inserm)와 파리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공립 병원 소속 연구팀은 잠에 쉽게 드는 참가자 103명을 모집해 낮잠 실험을 한 결과, 사람들이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수면과 각성 사이’ 영역의 뇌 활동이 참가자의 창의성을 높여 주었다고 보고했다.
‘수면과 각성 사이’란 어떤 때일까? 인간이 수면 시간 동안 잠에 덜 든 상태와 완전히 깊게 잠들어 마치 죽은 듯이 보이는 상태를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수면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때는 주로 뇌파, 눈 운동, 근육의 활성 상태를 측정하는데, 앞서 말한 잠에 덜 든 상태와 완전히 깊게 잠든 상태는 눈 운동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각각 렘(Rapid Eye Movement, REM)수면과 비렘(Non-Rapid Eye Movement, NREM)수면으로 구분된다. 빠른 눈 운동을 하는 렘수면이 잠에 덜 들어 꿈을 꾸는 단계에 해당한다.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차이가 1950년대에 처음 포착된 후 비렘수면은 잠이 깊어지는 정도에 따라 다시 1~3단계로 구분되었다. 즉 우리는 막 잠이 들기 시작한 때에 활발히 꿈을 꾸고(렘수면), 점점 깊게 잠들면서 온몸에 힘이 풀리고 의식이 사라진다(비렘 1단계→비렘 2단계→비렘 3단계). 이렇게 깊은 잠의 정점을 찍고서 비렘 3단계에서 렘수면까지 거꾸로 돌아오기를 약 90분 주기로 반복한다. 연구진이 말한 수면과 각성 사이 영역이란 선잠 상태(Hypnagogia state)라고도 불리는 비렘 1단계(N1 단계)다. 에디슨이 까무룩 잠들어 손에 힘을 놓는 그 전까지의 시간이라 볼 수 있다.
1분의 얕은 잠이 불러온 차이
연구진은 103명 모든 참가자에게 간단한 퀴즈를 주고 한 번에 30문제씩 두 번(총 60문제) 풀도록 했다. ‘1, 4, 9’ 세 가지 숫자로만 채워진 8자리 숫자열을 보고 마지막에 올 숫자를 맞추는 퀴즈로, 앞뒤로 같은 숫자가 나오면 같은 숫자를(9, 9가 연속하면 9), 서로 다른 숫자가 나오면 나머지 한 숫자를 말하는(9, 1이 연속하면 4) 간단한 두 규칙을 따른다. 그런데 사실 이 퀴즈에는 ‘마지막 숫자는 두 번째 숫자와 같다’라는 제3의 규칙이 숨어 있었다. 이를 참가자가 실험 중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지가 창의력의 지표였다.
첫 실험을 마친 후 연구진은 제3의 규칙을 일찍 발견한 몇몇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에게 ‘반쯤 누운 상태에서 눈을 감고, 손에는 컵을 쥔 채’ 20분 동안 편히 쉬도록 했다. 에디슨의 낮잠 기술을 그대로 실험에 적용한 것이다. 다만 에디슨 때와 달리 이 실험에서는 뇌파 측정 장치를 활용해 참가자 각각이 컵을 떨어뜨리기 직전 어떤 수면 단계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20분 내내 깨어 있었지만(49명) 일부는 N1 단계에 1분가량 도달했고(24명), 또 다른 일부는 그보다 깊은 N2 단계까지 갔다(14명).
휴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첫 실험과 같은 방식으로 총 180문제를 풀었다. 그 결과, N1 단계 그룹의 83%가 숨겨진 규칙을 알아냈다. 한편 온전히 깨어 있던 그룹에서는 31%, N2 단계까지 잠들었던 그룹에서는 14%만이 규칙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N1 단계가 창의력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나 더 깊은 수면 상태에 이르면 유익한 효과가 사라진다고 결론 내렸다. 또 에디슨의 설계처럼 낮잠을 자는 동안 물건을 들고 있는 것은 N1 전체보다는 몇 초간 지속되는 미세수면(microsleep)과 관계된다고 보았다. 단 N1 단계가 어떤 기전으로 창의력을 촉진하는지, N2 단계는 왜 이를 억제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대개 수면과 창의력은 뇌가 평소와 다른 상태에서 숨은 정보를 새롭게 융합한다는 데서 그 연관성을 찾는다.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연구가 나날이 새로운 만큼 구체적인 기전을 밝히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다만 위 연구의 공동 저자인 델핀 오데트 프랑스 국립 보건의학연구소 연구원은 잠자는 시간을 시간 낭비 혹은 생산성의 손실로 보는 통념과 달리, 수면이 창의적 활동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이번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1분이든 8시간이든 졸음을 날릴 수 있을 만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 옛사람의 습관에서 실험 아이디어를 얻는 연구자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 모두 우리에게 쓸모 있는 일로 보인다.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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