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블랙홀의 모든 것 (KISTI)

조조다음 2021. 8. 18. 06:30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극단적인 천체이며 정말로 이상하고 복잡합니다. 안으로 빨려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며 블랙홀이란 건 대체 뭘까요?


먼저, 시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공간은 우주의 연극이 펼쳐지는 거대한 무대입니다. 그러나 공간은 고정된 무대가 아니고 시간 역시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똑같이 흐르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시공간은 상대적입니다. 물질은 공간을 구부리고 구부려진 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운동할지를 알려줍니다. 항성과 행성들을 올려놓으면 무대는 축 처집니다.


이러한 무대의 뒤틀림이 만드는 굴곡과 깊이가 중력을 만들어 냅니다. 블랙홀은 무대를 단순히 구부리는 걸 넘어서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가깝습니다. 너무나 많은 질량이 집중되어 있어서 우주가 일종의 접근금지 구역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선 물리법칙이 바뀌어 버리죠. 대부분의 블랙홀은 막대한 질량의 항성이 죽는 순간에 생깁니다.

지금은, 매우 무거운 항성이 죽는 마지막 순간에 광속의 거의 1/4의 속력으로 붕괴하여 폭발한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질량이 극도로 밀집되어 밀도가 너무 큰 나머지 시공간을 찢어버린 듯한 천체가 탄생합니다.


질량이 태양의 10배인 블랙홀이 지름이 60km에 불과할 정도죠. 블랙홀을 직접 본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블랙홀의 영향 아래 놓인 시공간은 보이지 않는 일방향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우주에 껍데기를 두르는데 한 번 들어가면, 밖의 우주와는 영원히 차단되어 나오지 못합니다.


블랙홀은 공간을 너무나 심하게 구부리기 때문에 빛조차도 이 덫을 탈출하지 못합니다. 내부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블랙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블랙홀 안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블랙홀은 관측이 가능한데 블랙홀이 물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체는 블랙홀 주변을 공전할 수 있습니다. 항성이나 행성 주위를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많은 블랙홀들이 사건의 지평선 외부에 블랙홀을 공전하는 강착원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원반의 물질들은 엄청나게 뜨거워질 수 있는데 블랙홀에 가깝게 공전하면서 광속의 절반 정도까지 가속되어 다른 입자와 살짝이라도 부딪히거나 마찰되면 수억 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며 이에 따라 블랙홀 주변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밝습니다.


여러분이 블랙홀에 가까이 가거나 아예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여러분은 우주에서 가장 이상한 거울의 집을 보게 될 겁니다. 블랙홀 주위를 도는 건 물질만이 아닙니다. 블랙홀의 중력은 너무 강해서 빛도 그 주위를 공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건의 지평선 바깥쪽의 빛 구에만 머무르고 있다면 어느 방향으로든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뒤통수가 눈 앞에 보일 겁니다. 등 쪽에서 출발한 빛이 블랙홀을 빙 돌아 눈에 도착할 테니까요. 블랙홀은 또한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여러분에게는 저편의 우주가 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블랙홀 체험을 끝내고 돌아오면 밖의 우주에선 억겁의 시간이 흘렀음을 깨달을 겁니다. 미래로의 기이한 일방향 시간여행인 셈이죠. 사랑하던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고요. 그러나 블랙홀에 가까이 가는 게 매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스파게티화 되어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죠.

 

여러분의 발 쪽은 머리 쪽보다 블랙홀에 더 가까우므로 중력이 발 쪽을 보다 강하게 잡아당겨 여러분을 찢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려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잡아당기는 힘은 더 강해지고 여러분의 몸은 점점 더 가늘고 길게 쥐어짜지면서 가늘고 뜨거운 플라즈마 줄기가 되었다가 한입에 꿀꺽 삼켜지고는 영영 사라질 겁니다.


스파게티화는 비교적 작은 블랙홀일 경우에만 위험이 되는데 이들의 반지름이 무척 작기 때문입니다. 은하 중심에서 찾을 수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에 가면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가는 경험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건의 지평선에 다가가면 멀리 있는 관찰자가 보기에는 여러분이 지평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 있는 상태에서 희미해져 갑니다.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방출한 빛이 사건의 지평선으로부터 느릿느릿 탈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블랙홀의 공동이 주위로 치솟아 오르는데 이는 일부 방향의 빛만이 여러분에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암흑천지가 되고 여러분이 볼 수 있는 우주는 아주 작게 빛나는 점만 남았습니다. 이곳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는 시공간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어서 시간 여행이 정말로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다행이군요.

 

하나라도 탈출한다면 온갖 종류의 타임 패러독스가 발생할 것이고 우주를 망가뜨리는 문제가 발생할 테니까요. 사건의 지평선은 무섭지만 그만큼 그런 참사를 잘 막아주는군요. 여기까지 오래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별 의미는 없습니다. 이제 남은 건 얼마 안 가 으깨져 죽는 결말 뿐이니까요.


사건의 지평선 내부의 시공간은 극도로 휘어지고 경사져 있어서 여기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여러분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조건 블랙홀의 중심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발버둥 쳐 봤자 더 빨리 중심으로 향할 뿐입니다. 최대한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블랙홀의 중심에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온 모든 물질의 질량이 이 무한히 작은 점 하나 안으로 우그러듭니다. 블랙홀 덫 속으로 들어간 물질의 정보는 영영 사라지고 복원할 수 없습니다. 특이점 안은 모든 것이 균일한 상태인데 이 성질은 우주를 아주 멋드러지게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뒀으니 더 알아보고 싶다면 참고하세요.

 

일단은, 블랙홀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물체들은 그대로 빨려 들어가 특이점으로 모이게 된다는 것만 알아 둡시다. 이렇듯 과거의 정보를 복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블랙홀은 오직 3가지 특성만을 가집니다. 바로 질량, 각운동량, 전하입니다. 이 밖에 다른 정보들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본 입자들과 꽤나 비슷하죠.


무슨 말이냐면 우주의 블랙홀들은 빠짐없이 전부 똑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질량이 조금씩 다르고 회전이 느리고 빠름의 차이도 있겠지만 모든 특이점들을 모아 신비한 물리 박물관에 전시한다면 전부 똑같아 보일 겁니다. 마치 전자처럼요. 그러나 기본 입자와 마찬가지로 특이점의 성질은 특이점을 묘사하는 최선의 방법일 뿐 실제로 특이점을 정확히 표현하는 건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인데 이 이론은 특이점을 묘사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시공간의 곡률도 무한대로 발산하고 밀도도 무한대로 발산합니다. 그리고 물리법칙은 완전히 깨져버립니다. 특이점은 표면이란 게 없고 크기도 없으며 마치 0으로 나누기를 우주에 나타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특이점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이거나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측과 시공간에 대한 최선의 이론에 따르면 말이죠. 또한 지금껏 보여드린 내용을 포함해 여러분이 들어온 블랙홀에 대한 모든 지식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입니다. 수학적인 계산이 훨씬 쉽기 때문이죠.


그러나 블랙홀은 항성이 죽는 순간에 탄생하고 항성은 마지막 순간에 매우 빠르게 회전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우주의 모든 블랙홀은 지금도 돌고 있을 겁니다. 회전하는 속도도 매우 빠른데 광속의 최대 90%까지 회전합니다. 이는 블랙홀이 사실 흔히 알려진 것보다도 훨씬 기이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회전하는 블랙홀의 특이점은 훨씬 역동적입니다. 회전력이 특이점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면서 소위 '특이링'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회전은 너무나 강력해서 시공간 자체가 끌려다닐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회전하는 블랙홀의 주위에는 또 다른 영역이 생성되는데 이를 에르고 영역이라 부릅니다.

 

이 영역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시공간이 소용돌이를 치듯 흐르며 이 조류를 거스를 순 없습니다. 이에 따라 여러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블랙홀 주위를 공전하게 됩니다. 좋습니다. 그럼 우주가 어두워질 때까지 블랙홀이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도 확실하진 않지만 현재의 물리학을 기반으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호킹 복사를 알아봅시다. 양자장론에 따르면, 진공은 양자 요동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이 요동으로 인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입자와 반입자 쌍이 나타나고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하다가 이내 소멸합니다. 이 현상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면 두 입자 중 하나가 지평선 안으로 떨어져 소멸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른 한 입자가 호킹 복사로 방출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입자의 질량은 블랙홀에서 온 것이여야 하므로 블랙홀은 억겁의 시간에 걸쳐 작아지고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호킹 복사는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는 입자와 다르게 새롭게 생성되는 물질이므로 블랙홀의 질량을 빼앗아 갑니다.


블랙홀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호킹 복사는 점점 강해지고 빨라지다가 핵폭발과도 같은 고에너지 섬광을 일으키고 완전히 증발합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말로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태양 질량의 블랙홀의 수명은 10의 67승 년이나 됩니다. 이 말은, 햇수로 1만년이 10억의 여섯제곱 번 지나고서야 0.0000001%의 질량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보다 훨씬 많습니다. 은하 중심부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 중 가장 무거운 블랙홀은 수명이 10의 100승 년이나 됩니다. 이게 얼마나 긴 시간일까요? 모래시계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여기 있는 모래알갱이의 수는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수와 같습니다. 100억년이 지날 때마다 모래알갱이 하나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모래가 전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도 이 블랙홀의 깎인 수명은 1%도 안 됩니다.

 

이 정도의 시간 규모는 머리를 굴린다고 이해될 만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블랙홀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고 우리의 이론이 내놓은 내부의 모습은 아마 틀릴 겁니다.


하지만 전부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건 단지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뜻이니까요. 그건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남았다는 뜻이며 거대한 생각거리가 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과학을 하는 거죠.


나중에 보면, 최소한 블랙홀을 연구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은 확실할 겁니다. 한 명이라도 남아있는 한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