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사람도 미꾸라지처럼 장호흡 가능할까? (KISTI)

조조다음 2021. 7. 12. 06:30

미꾸라지나 메기, 코리도라스 같은 물고기를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해보면 특이한 행동을 볼 수 있다. 바로 수면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행동이다. 이는 표면에 올라가 재빨리 공기를 삼키기 위함이다. 삼킨 공기는 소화관을 거쳐 장 말단에 가는 데 여기의 장벽에는 모세혈관이 조밀하게 분포해 있어서 기체교환이 잘 일어난다. 즉 장으로 호흡을 한다는 말이다. 장호흡 덕분에 미꾸라지는 물이 말라 산소가 거의 없는 진흙 속에서도 살 수가 있다.

 

포유류도 장호흡 가능하다

 

그런데 이 장호흡은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원리적으로 우리 같은 포유류도 장호흡을 할 수 있다. 포유류에 장 끝에 있는 직장에도 혈관이 촘촘히 있기 때문이다. 만약 포유류에 항문에 산소를 넣어준다면 장호흡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런 의문을 실험한 사람이 있다. 일본 도쿄학교 의대 교수인 타카노리 타케베 연구팀은 생쥐 한 집단은 저산소 조건(산소 농도가 8%)에 두고 다른 한 집단은 같은 조건에서 항문으로 산소를 주입했다. 그러자 저산소 조건의 일반 쥐는 11분만에 사망했지만 항문으로 산소를 주입받은 쥐들은 18분 동안 생존했다.

 

이때 미꾸라지처럼 직장의 장벽을 아주 얇게 만들어 산소가 더 많이 녹아들고 기체가 쉽게 교환되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연구진은 약물로 쥐의 장벽을 얇게 만든 뒤 저산소 조건에 두었는데 놀랍게도 많은 쥐가 1시간 정도 생존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은 장벽을 긁어서 하는 것인데 너무 번거롭고 위험했다. 그래서 연구진은 산소 기체를 주입하다는 대신 산소가 더 많이 녹아들 수 있는 산소 액체를 주입하는 방법도 실험해봤다. 이들이 사용한 물질은 바로 과불화탄소이다. 과불화탄소 용액에는 산소 분자가 아주 잘 달라붙기 때문에 인공 혈액을 개발하는 데 많이 연구됐고 지금은 승인 취소됐지만 한 때 인공 혈액으로 실제 쓰이기도 했다.

 

연구진은 산소가 녹아 들어간 과불화탄소 용액을 쥐의 항문에 넣고 다른 대조 집단에는 소금물을 넣었다 그리고 저산소 조건에서 두 집단을 비교했다. 그 결과 소금물을 넣은 쥐들은 활동이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용액을 주입받은 쥐 집단은 활동에 문제가 없었다. 혈액 내 산소 포화도 역시 용액을 받은 쥐 집단이 훨씬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쥐보다 덩치가 훨씬 큰 쥐 집단에서도 관찰됐다. 항문을 통한 장호흡이 포유류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사람에게 응용한다면 코로나19 시대를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쥐와 돼지에서 과불화탄소 용액을 항문에 주입해 호흡을 돕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면 머지 않아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수많은 국가를 위기에 빠트렸던 것이 바로 중증 환자를 위한 산소통과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아까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위중한 환자나 고령 환자에게 장호흡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 희소식이 될 것이다.

 

사람도 항문을 통해 호흡할 수 있다는 연구가 어찌보면 엉뚱하거나 황당해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 환자가 호흡 곤란을 겪으면서도 단지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향후 후속 연구를 계속 진행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실제로 응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