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머릿속에는 매일 수십 수백 가지의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말로 하거나 노트에 글을 쓰거나 컴퓨터를 사용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간단한 표현 방식도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단지 생각만으로 기계장치를 움직여 원하는 글자를 입력하거나 원하는 메뉴를 클릭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상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연구돼 왔다. 바로 뇌와 컴퓨터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즉, 뇌-컴퓨터 상호작용(Brain–Computer Interface, BCI)을 현실화하는 것은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아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생각으로 컴퓨터를 움직이는 BCI
BCI 기술의 기본 개념은 이렇다. 우리가 특정 언어나 심상을 떠올릴 때는 뇌세포의 전기적인 신경 신호가 만들어진다. 만일 우리가 이 신경 신호의 패턴을 알 수 있다면 이를 다시 컴퓨터 언어로 신호화해 입출력 기계장치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응용한다면 중증 신체 장애인도 무리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BCI는 터치스크린처럼 물리적 접촉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의사소통 인터페이스로서 소통의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에 응용된다면 다른 사람의 감각과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BCI는 뇌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 침습형과 비침습형 두 가지로 나뉜다. 침습형이란 이름대로 마이크로칩을 두피에 넣어 뇌파나 뇌세포의 신호를 측정하는 것이다. 뇌에 칩을 심기 때문에 특정이 비교적 정확하지만 아무래도 시술이 필요하다. 비침습형은 뇌파를 측정하는 헬맷이나 헤드셋 형태의 장비를 쓰는 것이다. 시술이 필요없어 간편하지만 측정의 정확도는 다소 떨어진다.
침습형 BCI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2018년에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연구팀은 국내 최초로 원숭이 뇌에 심은 미세전극 칩이 감지하는 뇌신경세포 신호로 생각을 읽어 그 의도대로 로봇팔을 움직이는 실험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대뇌피질 안쪽에 가로 세로 4㎜ 크기의 미세전극 칩 2개를 심었다. 하나는 원숭이의 생각을 읽어내는 칩이고, 다른 하나는 후속 연구에 쓰일 칩으로 로봇팔에서 오는 정보를 역으로 원숭이 뇌에 전달하기 위한 칩이다.
원숭이가 팔을 뻗을 때는 그 방향에 따라 뇌신경세포가 특정 운동신경을 자극하는 일정한 전기적 신호 패턴이 나타난다. 눈으로 책상 위에 놓인 컵을 보고 손을 뻗어 집어 드는 단순한 동작을 하는 데만 약 30가지의 미세 방향 조정이 이뤄지는 데 그에 따라 매우 복잡한 뇌신경세포 신호를 세세히 분석해 3차원상의 팔 움직임을 로봇팔로 구현한다.
최근에는 테슬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생명공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에서 두뇌에 칩을 심은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게임을 조작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페이저라는 이름이 붙은 이 원숭이에게는 뉴럴링크사가 개발한 ‘N1링크’라는 칩이 삽압됐다. 이 칩은 원숭이의 뇌에서 일어나는 뇌신경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데이터화해 게임기 조이스틱의 움직임과 연동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페이저가 한 게임은 공을 주고받는 단순한 핑퐁 게임이었지만 연구진은 페이저가 조이스틱을 움직일 때마다 나타내는 복잡한 뇌의 활동을 기록해 신경활동 패턴을 모형화해 뇌활동만 보고도 페이저가 어떻게 손을 움직일 것인지 알아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것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영장류 연구처럼 침습적 방법을 아직은 활용하기 어려워 비침습적 방법으로 뇌파를 측정하는 장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무선 BCI로 뇌파를 측정하고 전송하는 장치가 개발돼 화제다. 미국 브라운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종합병원이 함께 모인 연구그룹 ‘브레인게이트 컨소시엄’은 전통적인 케이블 대신에 폭 5㎝에 무게 42g을 약간 넘는 작은 송신기가 달린 BCI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유선 시스템과 동일한 포트를 사용하여 사용자 뇌의 운동피질 내에 있는 전극 배열에 연결되어 대뇌피질 내 센서에 의해 기록된 신호의 전체 스펙트럼을 전송한다.
척수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35세 및 63세의 남성 2명이 실험에 참여해 무선 송신기가 장착된 브레인게이트 시스템을 사용하여 태블릿 PC를 마음대로 클릭하고 문자를 입력했다. 이 무선 시스템은 유선 시스템과 거의 차이 없이 신호를 전송했으며 클릭도 타이핑도 매우 정확했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대부분의 BCI 연구가 이루어지는 실험실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했다. 케이블의 제약을 받은 않은 탓에 참가자들은 최대 24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BCI를 사용할 수 있었다.
BCI 무선 장치가 상용화 된다면 더 이상 인간의 의사표현과 행동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미래가 올 것이다. 인류는 과학기술에서 또 한번 답을 찾고 있다.
글: 이병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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