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으로 퍼지고 있어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팬데믹’ 상황이 초래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를 퇴치할 치료제와 근본적으로 이 바이러스를 막아줄 백신 개발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현재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시의 ‘우한 화난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유통되던 야생동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뱀, 천산갑, 밍크, 박쥐 등의 동물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박쥐다.
중국과학원의 연구진은 코로나-19가 박쥐에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박쥐는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불리는 동물로 사스나 메르스 같은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박쥐는 바이러스의 온상일까? 또 바이러스를 운반하면서 왜 박쥐는 질병을 앓지 않는걸까?
환경에 적응하며 특별한 면역체계를 갖춘 박쥐
박쥐가 여러 바이러스의 숙주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박쥐의 특별한 면역체계 덕분이다. 척추동물의 면역세포에서는 ‘인터페론’이라는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 단백질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같은 외부의 침입자들에 맞서 개체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주로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는데, 감염된 세포와 인접 세포 사이에 개입해 바이러스 복제를 제한한다.
인터페론은 개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생성된다. 감염이 되지 않았는데도 인터페론이 생성된다면 몸은 지나친 면역 반응으로 조직이 손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면역계가 발동해 체온이 올라간다. 바이러스는 고온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고열로 인한 오한, 어지러움, 통증을 느낀다.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박쥐는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을 때도 세포에서 지속적으로 인터페론이 만들어진다. 박쥐가 왜 지속적인 면역 기능 활성화하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는지 명확한 설명은 없다. 연구자들은 박쥐가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감염돼도 무리 전체가 절멸할 수 있어 이런 시스템이 생긴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박쥐가 바이러스에 강한 이유 또 하나는 장거리를 날아가는 특성 때문이다. 박쥐는 밤에 최대 350km 이상을 비행한다. 당연히 이런 장거리 비행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진대사율과 체온이 올라가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박쥐는 비행 중에 체온이 40℃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발열은 그 자체로 면역 반응이므로 바이러스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더불어 신진대사율 증가에 따라 DNA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가 생성되는데 박쥐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시스템도 발달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과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다보니 강력한 항바이러스 체계를 오랜 세월에 걸쳐 갖추게 된 것이다.
박쥐와 잘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야 할 때
박쥐가 지금처럼 다양한 종으로 분화한 것은 약 5천만 년 전이라고 한다. 5천만 년 동안 박쥐는 바이러스를 완벽히 제거하기보다는 바이러스가 있어도 영향 받지 않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미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이 발표한 ‘박쥐 체내의 바이러스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박쥐에게는 총 137종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있다. 여기서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61종이고 이를 다시 종별 평균으로 산정하면 박쥐는 2.71종의 바이러스를 달고 다니며 이 중에서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바이러스는 평균 1.79종이다.
그렇다고 박쥐를 박멸해야 할까? 각각의 생물은 생태계에서 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박쥐를 박멸한다면 우리가 모르는 후폭풍이 불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박쥐를 볼 일이 거의 없는 만큼 더 중요한 것은 박쥐를 포획해 약재나 식재료로 쓰지 않는 게 아닐까? 박쥐와 잘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글: 홍종래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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