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주목받는 단어 중 BYOD가 있다. Bring Your Own Device의 약자로, 문자 그대로 ‘네 것을 마음대로 가져와서 써라.’라는 뜻이다. 기업은 클라우드 환경을 통해 가상 데스크톱과 업무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고 직원들이 자신의 노트북PC,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각자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기기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비즈니스 환경에 IT 기술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인 해외 기업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하드웨어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업무공간까지 효율적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몇몇 대기업부터 시작해 관공서까지 BYOD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목적은 물론 ‘비용절감’이다. 주목할 점은 BYOD가 단순히 이면지를 활용하는 수준의 푼돈 절약이 아니라 업무환경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여러 비용요소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직원들은 업무환경의 핵심인 컴퓨터 환경을 가상화해 장소나 시간의 제약 없이 필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기업들이 BYOD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데서 알 수 있듯 업무환경이 발전해 온 역사는 사실상 비용절약의 역사다. 업무환경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인적, 물리적 자원들은 그 양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어 비용대비 효율을 높여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혁명 이전에도 업무환경은 이미 격변에 가까운 변화를 겪은 바 있다. 바로 복사기가 그 주역이었다.
문서는 어느 시대에나 커다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은 일찍부터 관료제를 발달시켜 다양한 공공문서들을 점토판이나 석판의 형태로 후세에 남겼으며, 중국에서도 관리들은 고대부터 수많은 공문서와 씨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가 있었으니 바로 문서의 복제였다. 문서를 배포하거나 오래 보관해두려면 정확하게 똑같은 내용의 문서를 여럿 만들 필요가 있었다.
복사기가 없던 과거에는 문서를 복제하려면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했다. 필경사(筆耕士)나 서기(書記)와 같은 전문직업군이 이 일을 담당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대량으로 배포하거나 보관해야 하는 문서를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일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상 업무에서는 사람 손이 중요했다. 일상 업무에 필요한 서신이나 보고서 따위는 아주 적은 수량만 필요한데다 신속히 처리해야 했기에 거추장스럽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인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문제는 손으로 베껴 쓰는 일도 여간 번잡스러운 작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질 좋은 종이에 볼펜으로 쓱쓱 써내려가는 지금의 환경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종이와 잉크의 질이 좋지 않아 필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당시 사용하던 잉크는 종이에 잘 흡수되지도 않고 마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완성한 문서에 남은 여분의 잉크를 고운 모래로 닦아내는 과정을 거쳐야 접었을 때 필기 내용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가독성이 좋고 우아한 필체를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든가, 서기가 전문직업인으로서 손쉽게 고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문서 복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던 셈이다.
몇몇 사람들은 문서의 복사본을 더 편리하게 만들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상업용 증기기관을 발명한 영국의 제임스 와트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사업상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편지들의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 별도의 사본을 보관해두곤 했다. 그러자면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두 번 써야 했는데 수많은 편지를 일일이 이렇게 보관하자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서기를 두 명 고용하고 와트 자신은 구술만 하면 그만이었겠지만 일개 사업자인 와트가 서기를 마음껏 고용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고심하던 와트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보기로 한다.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와트는 일반 잉크보다 더 진하게 만든 특별 잉크를 만들어 최대한 얇은 종이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원본과 복사지를 물에 적신 후 압착 롤러로 밀어 원본의 잉크가 복사용 종이에 묻도록 했다. 물론 잉크가 묻은 곳은 복사지의 뒷면이고 좌우가 바뀐 모습이었지만 매우 얇은 종이를 사용했기에 잉크가 묻은 면을 뒤로 가게 해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트는 자신이 고안한 습식 복사 방식 덕분에 손쉽게 편지의 사본을 보관해둘 수 있었다. 습식 복사기는 원래 와트가 자신이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주위에 알려지면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자신의 회사인 제임스 와트 회사(James Watt & Co)를 통해 정식 제품으로 출시했다.
습식 복사기는 곧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널리 사용했는데 1785년, 미국 독립의 주역들도 와트의 복사기를 이용해 독립선언문의 복사본을 만들었을 정도다. 복사 방식 상 원본이 상할 우려가 있고 12시간이나 종이를 적셔두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음에도 와트의 습식복사기는 20세기 초까지 사용된다.
와트의 복사기가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와트의 복사기로는 사본 한 부를 더 만들 수는 있어도 동일한 문서를 여러 장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연히 복사기의 활용처도 지금처럼 보고서나 서류를 여러 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와트 자신이 사용했던 대로 서신 등의 개인적 문서의 사본을 만들어두는 데 그쳤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동일한 문서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이후 1887년 딕(A.B. Dick)사가 최초의 상업용 등사기를 출시했고, 1959년 정전식복사기가 등장한 이후부터 업무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엄청난 숫자의 타자수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으며 몇 장 필요하지도 않은 인쇄물을 얻으려고 거추장스러운 윤전기를 가동할 필요도 없었다. 거의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도 아주 쉽게 문서를 여러 장 복제해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서를 이용하여 오가는 정보의 양도 폭증했다. 이전까지 틀에 박힌 문서를 반복하여 작성하느라 대부분 시간을 허비했던 사무직 직원들은 복제를 위한 단순 반복업무 따위는 복사기에 미뤄버리고 더 생산성이 높은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정전식 복사기는 원본과 거의 동일한 복사본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의 문서가 빠르게 퍼져 나가고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문서가 빠르게 복제되고 유통되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대규모 조직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듯 복사기는 사무 환경뿐 아니라 기업활동의 규모와 빠르기도 바꾸어 놓은 발명품이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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