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웬만해선 어디 가서 머릿수로 밀리지 않는 나이다. 이 연배를 포함하는 1955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붐 세대’라 부른다. 약 90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은 머릿수로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한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를 이끌어왔다.
5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는 요즘은 한국경제에 걱정이 많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떠날 경우 생산과 소비 모든 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수명을 생각하면 중장년층 스스로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이 깊어진다. 청년 세대의 극심한 실업난 못지않은 위기의 그림자가 그들에게도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저출산국가라, 고령화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60세가 넘는 2027년경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가 되면 사회 전체에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짙어 벌써부터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둥산을 단숨에 푸른 숲으로 변신시킨 우리나라 산림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있다. 1970년대에 국가 전체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사업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당시 심었던 나무들은 2013년 현재 40년생 내외의 나이를 가지게 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 숲의 평균 나이도 30년 후반으로 이와 비슷하다. 1970년대 심은 나무들이 ‘포레스트붐 세대’ 정도 되는 셈이다.
2010년 산림기본통계에는 나무의 나이(영급)별로 차지하고 있는 면적에 대한 자료가 있는데, 30년생 이하가 31.7%이고 31년생 이상이 65.1%이다. 물론 이들 나무는 대부분 40년 미만이다. 숲도 사람들처럼 어린나무에 비해 어른나무가 많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노인나무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사람의 경우 청년이나 장년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나무는 오래된 나무가 더 쓸모가 있다. 임업에서는 가슴높이의 나무줄기의 지름에 따라 숲의 이름을 붙이는데, 25cm 미만이면 어린나무 숲, 즉 ‘유령림’이라고 하고 26~40cm 미만이면 ‘장령림’이라고 한다. 40cm 이상이면 ‘노령림’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가 돼야 실제로 목재로 쓰기 좋은 상태가 된다.
현재 우리 숲은 ‘장령림’ 정도여서 나라 전체에서 숲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도 목재를 생산할 수 있는 면적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꾸준히 숲을 가꿔온 덕분에 앞으로 쓸만한 목재가 많아질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숲 가꾸기’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나무 사이에 적당한 공간을 주는 솎아베기로 숲을 가꾼 산림과 그대로 둔 산림을 비교한 결과 그동안 자란 지름이 각각 7cm와 2.5cm로 3배 정도 차이가 났다. 아직 어린나무 숲이 많은 우리 산림에 숲 가꾸기를 한다면 지름을 더 빨리 키워 쓸모 있는 목재를 빨리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무에 가지치기를 해주는 숲 가꾸기 방식은 옹이가 없는 고급 목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비슷한 연령대가 밀집된 우리 숲이 가진 한계점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한꺼번에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면 전체 경제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비슷하다. 우선 비슷한 크기의 나무가 붙어 있으면 산불에 취약한 숲이 되기 쉽다. 나무 크기가 비슷하므로 한번 옮겨 붙은 불이 확산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목재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시기가 같아지면 숲이 꾸준한 상태로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린 나무가 적은 산에서 큰 나무를 베어버리면 산이 다시 벌건 맨몸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이 새로 떠오르고 있다. 어린 나무와 중간 크기의 나무, 큰 나무가 골고루 함께 자라는 건강한 숲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발달한 숲은 다양한 나이와 종류를 가진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어린나무가 자라 성숙한 숲이 되면 나무의 활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일부 늙은 나무가 죽고, 이 자리에 어린나무가 자연스럽게 다시 자라 빈 공간을 다시 차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정한 공간에 다양한 나이를 가진 나무들이 섞일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숲을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하려면 장령림 일부를 솎아 베어 우량목재로 기르는 동시에, 다른 나무들도 들어와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또 노령림이나 새롭게 만들어야 할 숲이 있다면 과감하게 벌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공간에 다시 어린 숲을 조성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전쟁 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아기들처럼 1970년대 치산녹화(治山綠化) 운동으로 우리 숲에도 어린나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베이비붐 세대가 우리나라를 풍요롭게 일군 것처럼 30년 넘게 자란 나무들은 우리 산을 푸르고 울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무너지는 바람에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됐다. 사람들은 기형적인 인구구조와 빨리 다가올 노령사회에 대비해야 하고, 숲은 지속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는 그대로의 의미를 거뒀으니 이제 앞에 닥친 일을 현명하게 풀 차례다.
베이비붐 세대도, 포레스트붐 나무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결말을 맺을 수 있길 바란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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