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깊이 빠지면 가정과 사업에 소홀한 것, 주말이면 장비를 챙겨 떠나는 것이 골프와 낚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비싼 장비에 투자하고 조사와 프로 등의 존칭을 사용한다. 매니아가 될수록 뻥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공통점도 있다. 구골오작위(九骨五作慰)를 만들며 뼈(骨)골자를 쓴 이유는 골프는 골퍼에게 고통과 희열을 뼈에 사무치도록 주기 때문이다.
1. 골졸(骨卒).
매너와 샷 모두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의 단계다. 골프채를 든 것 만으로 골퍼인 체 하다가 잘 맞지 않으면 캐디를 탓하든가 동반자를 원망한다. 약간의 담이 걸린 것을 갈비뼈가 나갔다며 호들갑을 떨며 때론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로 화풀이를 한다. 평생 실력과 매너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기다. 스윙도 초보, 행동거지도 초보, 캐디에게 거는 수작도 초보다.
2. 골사(骨肆)
골프의 선비(骨士)가 아닌 방자할 사(肆)자가 붙는 단계. 자신이 골프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며 허풍이 세어지기 시작한다. 어쩌다 한 번 친 90대 스코어에 기고만장해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라운드가 잡히면 며칠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비싼 장비에 돈을 아끼지 않지만 결과는 언제나 꽝이다. 오비로 받는 벌타는 만회가 가능하지만 에티켓에 의한 벌타는 평생 동안 만회가 불가능한 것도 알지 못한다. 스윙이나 마음가짐이 방자(放恣)하기 때문이다.
3. 골마(骨麻)
눈을 감으면 해저드와 그린이 보이고 홍역을 앓듯 밤이나 낮이나 빨간 깃발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고수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고 아내의 바가지도 불사, 친구, 친지의 결혼식 불사, 결근도 불사, 라운드를 가지 못하면 한 주 내내 끙끙 앓는다. 가끔 80대 후반을 치며 기고만장한다. 하루 종일 연습장에서 지내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레슨을 한다. 필드에서도 무차별 레슨으로 진행을 마비시키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정도(正道)와 사도(邪道)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시기로 좋은 스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4. 골상(骨孀)
과부 상(孀), 아내는 주말과부 필수, 주중과부 선택이 된다. 집에 쌀이 떨어졌는지 궁금해 하지 않고 아이들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공치는 애비 잘못이라고 바가지를 긁어도 반발하지 못한다. 오직 골프 만이 인생 최고의 목표이자 삶의 의미가 된다. “아내가 골프에 이의를 제기하면 아내를 바꾸고 직업이 골프에 방해를 하면 다른 직업을 찾으라.”는 말을 신봉한다. 스윙을 교정하고 연습하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다. 스윙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마음을 바꾸기는 쉽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5. 골포(骨怖)
골프에 인생을 걸었지만 즐거움보다 고통과 상처가 많았다. 강해진다는 것은 실력의 진보보다 깊은 자상(刺傷)과 마음의 상처로부터 무뎌지는 것임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종종 골프가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80대 초 중반을 치며 방황을 거듭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치는 70대 스코어로 인해 행복해 한다. 언제나 골프를 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클럽을 만지지도 않을 거라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닌다. 단, 다음에 칠 때 까지만.
6. 골차(骨且)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공포로 보이던 골프채가 다시 동반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샷이나 매너가 한결 성숙해져 라운드는 행복을 위한 도구가 된다. 아내에게 언니야 라고 하거나 캐디에게 여보라고 하는 중독의 단계가 시작되었다. 최고의 샷보다 최고의 결과를 노리고 라운드를 하니 가끔 70대 타수를 기록한다. 하지만 골프의 심오한 세계를 알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7. 골궁(骨窮)
다할 궁(窮). 드로우와 페이드, 등의 기술적인 샷을 구사하는 초보고수의 단계다. 연습장에서 훈수하는 방법이 상당히 세련된 상태로 언더파를 노려본다. 하지만 여덟 번은 80대 초반이고 두 번 정도는 70대 후반을 친다. 캐디에 대한 예의도 바르고 골프에 접근하는 사고도 한결 성숙해 졌다. 골프의 구성요소 중 50퍼센트가 멘탈, 40퍼센트가 셋업, 스윙은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우주의 삼라만상을 핑계로 사용하는 점에서 아직은 하수의 때를 벗지 못했다.
8. 남작(藍作)
인생을 담고 세월을 품는 넉넉한 기쁨이 스윙의 곳곳에 배어 있다. 내기를 즐기되 결코 내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동반자와 쉽게 친하되 경망스럽게 라운딩 중 참견이나 훈수를 하지 않는다. 연습장에서 초보자가 물으면 아주 겸손하게 상의하듯이 가르쳐 주고 라운드 시 복장이나 매너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스코어의 대부분이 70대를 기록하는 초보 고수의 길로 접어든 단계다. 플레이에도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9. 자작(慈作)
마음에 자비의 싹이 트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동반자에게 관대해지는 깨달음의 단계다. 내기 욕심이 완전히 사라지고 스코어와 샷에 대한 욕심도 내색하지 않는다. 내기에서도 자신이 잘 쳐서 이기려 하지 절대 동반자가 무너지길 기대하지 않는다. 이븐파와 언더파의 주변에서 맴도는 작은 경지에 올라 있다. 골프를 즐기는 것이 이기는 조건이 되는 것을 깨달았고 진정한 고수의 길로 들어 서기 직전의 상태다.
10.백작(百作)
한 번의 라운드에서 백 번의 라운드를 경험한다. 그러나 아직도 배울 것이 많으니 골프의 지혜를 하나하나 깨우치는 기쁨에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골프도 세월도 라운드도 한 몸이 되면서 비로소 골프라는 심오한 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시작된다. 연습장이나 필드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행동 하나 하나에 기품이 있다. 꾸준하게 언더파를 치기 시작하며 나쁜 스코어카드를 받아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골프를 통해 세상은 이미 나의 슬픔이 없어도 충분하게 슬픈 곳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11.공작(空作)
마음 안에 두터운 믿음이 생겼고 지식과 샷은 심후한 내공으로 갈무리되어 범인들은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반쯤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고 우주의 신비 또한 거칠게 없이 이해되는 입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했다. 내공이 오기조원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초식엔 화려함이 모두 사라지고 극도의 단순함만 남았다. 지나온 골프인생을 무심한 미소로 돌아보며 조용하게 신선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12. 골성(骨聖)
드디어 입신의 경지에 올라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했다. 이는 도인이나 신선이 됨을 뜻하며 대자연의 윤회를 벗어나 대승적인 관점에서 해탈을 준비한다. 나도 없고 골프도 없고 골퍼도 없어지는 무상의 세상이 펼쳐진다. 무아의 경지로 피안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 중생의 슬픔을 외면 않고 어둠을 질러오는 한 세상의 아픔도 결코 외면하는 법이 없다. 드디어 신선이 되어 선계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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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격과 골프 스코어를 놓고 봤을 때 스코어는 그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골퍼들은 하찮은 스코어 때문에 자신의 인격을 손상시킨다. 최고의 골퍼란 정신적으로 진지한 골프를 하는 사람을 말하며 볼을 치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스코어가 좋으면 부러움을 받지만 매너와 에티켓이 좋으면 존경을 받는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언제나 당신의 몫이다.
출처 : 골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