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북한이 쏘아올린 은하 3호에 의해 100kg의 소형위성 광명성 3호가 궤도에 진입한 소식은 세계적인 빅뉴스가 됐다. 이렇게 소형위성이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된 것은 아마도 1957년 10월 4일 구소련이 발사한 84kg의 스푸트니크 1호 이후 처음일 것이다.
55년이라는 긴 간격을 가진 이 2가지 뉴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1957년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 스푸트니크 발사를 충격으로 받아드린 것은 운반체 R -7 로켓이 위성뿐 아니라 핵폭탄을 미국으로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R-7은 미국보다 먼저 구소련이 완성한 최초의 우주발사체이자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이었다. 이점에서 북한의 은하 3호 또한 R-7과 마찬가지로 우주발사체이자 장거리 미사일의 양면성을 가진 로켓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과 우주발사체 관련 로켓기술은 매우 큰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유사점은 매우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ICBM급의 장거리 미사일은 7km/s의 속도를 요구하는데, 이에 1km/s만 더해준다면 탄두는 다시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위성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나라들은 자연스럽게 미사일을 우주발사체로 개조해 미사일의 성능을 점검하고 하고 있다. 구소련, 미국, 중국, 이란, 이스라엘이 이런 국가들이다. 이와 달리 순수한 과학탐사 목적의 우주발사체를 개발한 나라는 영국, 프랑스, 일본 정도다.
로켓은 추진제의 특성에 따라 액체로켓과 고체로켓으로 나눌 수 있다. 미사일은 즉각적인 사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고체로켓이, 우주발사체는 경제적인 성능을 요구하기 때문에 액체로켓이 적합하다. 미국의 경우 액체로켓 미사일은 모두 은퇴하고 지금은 단거리뿐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이 모두 고체로켓으로 돼 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러시아의 액체 로켓인 스커드 미사일을 바탕으로 로켓기술을 쌓아와, 고체로켓 기술은 부족해 보인다.
북한과 달리 우리나라는 군사목적과 과학목적의 로켓개발을 분리해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사일인 현무는 고체로켓이고, 우리가 자력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한국형우주발사체(KSLV-2)는 3단형 액체로켓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은 기술적으로 볼 때 은하 3호와 한국형우주발사체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은하 3호가 기존의 미사일을 개량한 것인 반면 한국형우주발사체는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고 있는 로켓이다. 이렇게 그 출발선은 다르지만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비슷하다.
은하 3호의 목적지는 500km의 태양동기궤도이고 한국형우주발사체도 이와 비슷한 6~700km의 태양동기궤도이다. 태양동기궤도란 남북을 도는 극궤도와 비슷하지만 위성이 특정한 높이에서 특정한 경사각으로 비행할 경우, 태양에 대해 항상 같은 자세각을 가질 수 있다. 이 점은 태양전지로 만들어지는 전력이 일정하고 같은 일사 조건으로 지구를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우리나라의 아리랑 위성을 비롯한 지구관측위성이 선호하는 궤도다. 이번 은하 3호의 경우 원궤도 500km에 궤도경사각 97.4도의 태양동기궤도에 광명성 3호를 진입시키려 했다. 하지만 3단 분리시점에서의 정밀성 부족으로 위성이 500km의 원궤도가 아닌 근지점 499km와 원지점 584km의 타원궤도에 진입하고 말았다.
그런데 북한의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서해위성발사장이나 우리의 고흥군 나로면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에서는 태양동기궤도(97~98도)로 직접 로켓을 발사할 수 없다. 이들 발사장에는 로켓의 비행경로와 로켓단의 낙하 장소에 대한 인접 국가의 안전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발사각의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비행경로의 안전문제 때문에 태양동기궤도로 직접 발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태양동기궤도로 가기 위해서는 로켓이 비행도중 방향을 바꾸어야만 한다.
북한의 은하 3호는 2단을 분리한 후 추력방향조정기나 보조로켓을 이용해 3단의 방향을 틀어 태양동기궤도의 각도로 진입했다. 우리의 한국형우주발사체 또한 2단 분리 후 3단이 이런 요우(yaw) 기동을 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3단 로켓의 경우 위성과 함께 궤도에 진입해 우주쓰레기가 되거나 실패하는 경우에도 비교적 고도와 속도가 높아 대부분 추락할 때 타버리기 때문에 비행경로의 안전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로켓의 엔진과 구성도 닮아있다. 최근 서해에서 은하 3호의 산화제 탱크를 회수해 북한 로켓의 기술을 추정할 수 있게 됐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엔진 부분은 회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과 밀접하게 로켓기술을 교류하고 있는 이란의 로켓으로 볼 때, 은하 3호의 로켓엔진은 대형 로켓엔진 기본 방식인 ‘가스 발생기 사이클의 터보펌프 가압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개발 중인 한국형우주발사체의 엔진 또한 동일하다.
이 엔진 시스템은 구성이 간단하고 무게 효율면에서 우수하고 높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어 많은 나라에서 초기에 개발하는 방식이다. 은하 3호나 한국형우주발사체는 이런 기본형 엔진을 1단에 4개를 묶어 추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택하고 있다. 이 방법은 개발기간이 길고 문제점이 많은 대형 단일 엔진을 개발하는 것보다 쉽게 추력을 높일 수 있어, 많은 나라가 채택한 바 있다. 이외에도 엔진을 움직이는 김벌형 추력방향조정, 단 분리 기술, 무중력에서 작동하는 액체로켓 기술 등 앞으로 우리의 과학자가 극복해야할 기술들을 북한 과학자들은 10년 정도 앞서 완성해냈다.
물론 남북 로켓의 차이점도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추진제의 구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은하 3호는 악마의 가스로 불리는 저장성 추진제(히드라진이나 질산)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형우주발사체는 환경 친화적인(케로신과 액체산소) 추진제를 사용하고 있다. 성능 면에서도 한국형우주발사체는 1.5톤급의 상업위성도 발사할 수 있는 로켓이다. 이는 북한의 150배에 달하는 성능이다. 따라서 출발은 북한보다 늦었지만 2021년이 되면 북한을 단번에 따라잡을 뿐 아니라 역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40년 넘게 꾸준한 기술발전을 통해 북한의 로켓기술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성과의 교신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여 완벽한 성공이라 할 수 없지만,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겸한 위성발사에서 4번 실패하고 5번째에 성공해냈다.
따라서 한-러 합작이란 꼬리표가 붙은 나로호를 넘어 자력으로 개발하는 한국형발사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급한 결과주의보다는 꾸준한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최초의 한국형우주발사체의 개발목표가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이런 마당에 북한의 로켓에 자극을 받아 성급하게 발사체 개발기간을 앞당길 경우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로켓을 개발한 외국의 어떤 과학자는 ‘로켓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예측할 수 없는 실패가 너무나 많은 것이 로켓 개발임을 말하는 것이다. 즉 실패를 좌절로 생각하지 않고 전진해 나아갈 때에만 과학으로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로켓기술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글 : 정홍철 과학칼럼니스트(스페이스스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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