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20세기 최대 산업재해, 보팔 대참사 (KISTI)

조조다음 2012. 12. 14. 13:36

 

 

‘보팔에 정의를!(Justice in Bhopal now!)’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비슷한 상황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된다는 이야기다. 그 덕분에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을 보면서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다. 만약 그 역사를 잊어버린다면 똑같은 결말을 맞게 될 테니 말이다.

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에서 일어난 ‘불산가스 누출사고’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을 절실하게 떠올리게 한 사건이다. 28년 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났던 ‘보팔 대참사(Bophal disaster)’에서 교훈을 얻어 철저히 대비했다면 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보팔 대참사의 전말은 이렇다. 때는 1984년 12월 초, 장소는 인도 보팔에 있는 유니언 카바이드(Union Carbide Corporation)의 공장이다. 이 공장의 직원이 농약과 살충제를 만드는 데 쓰는 ‘메틸 이소시안산(Methlyl IsoCyanate)’을 저장하는 610번 탱크의 온도가 갑자기 올라가고 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메틸이소시안산은 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로 쓰인 ‘포스겐’과 ‘시안화 가스가’ 섞인 맹독성 화학물질이다. 이를 보관하는 탱크 내부는 섭씨 0도로 유지돼야 하는데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황한 공장 측은 할 수 있는 모든 안전 대책을 총동원했지만 저장탱크의 온도는 내려가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흐르고 계속 온도가 높아지던 610번 탱크의 콘크리트에는 균열이 생겼다. 결국 610번 탱크는 폭발했고, 42톤 규모의 메틸이소시안산 가스가 본격적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주변을 차단하고 12월 3일 새벽 1시에 비상경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가스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공기보다 무거운 이 유독가스는 지상에 낮게 깔려 도시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고통에 깨어났다. 눈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고, 숨이 턱턱 막히며 토할 것 같은 증상이 계속됐다.

새벽 2시 즈음 병원에 실려 온 환자 중에는 입에 거품을 문 사람도 있었고 이미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인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유독가스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가스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가스는 키 작은 아이부터 덮쳤고 주민들은 극심한 호흡곤란과 폐부종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

사고 다음 날 보팔 시내에는 동물 사체가 가득했다. 하루 만에 사망자가 8,000여 명이나 발생했으며, 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2만 명이 넘는다. 도시 전체에 시체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신들은 강에 던져지기도 했다. 주변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먹거리도 찾기 어려워 사람들은 고통 속에 죽어갔다.

이 대참사의 원인은 안전관리가 미비하고 비상대책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메틸 이소시안산 저장탱크는 온도가 올라가면 내부 압력이 높아질 우려가 있어 항상 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때문에 안전수칙에 따라 철저하게 감독해야 하는데, 보팔 공장의 시설은 안전시설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았다. 보팔이 인구 밀집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최대한 설계비용을 줄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설계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공장의 안전관리도 소홀해 사건 발생 당시에도 가장 기본적인 조기 경보체계마저 작동되지 않았다. 1981년 포스겐 가스 누출로 위험성이 보고 됐지만 시정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유니언카바이드사의 책임이 명백한 것이다.

그럼에도 유니언카바이드는 피해자 보상과 후유 장애 치료, 선천성 기형을 타고난 2세들에 대한 대책 등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 보팔 참사 피해자 대표로 인도 정부가 유니언카바이드에 요구한 보상금은 33억 달러였지만, 1989년 인도 대법원은 4억 7,000만 달러를 받는 것으로 판결 내렸고 이후 민사 책임도 인도 정부가 떠안게 됐다.

2004년이 돼서야 그동안 지연됐던 보상금 지급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뤄졌고, 57만 명 이상의 피해자가 보상금과 구호 프로그램을 받게 됐다. 폐기물 처리와 오염된 수질 관리, 사고 생존자와 2세에 대한 집단 의료보험도 도입됐다. 1984년에 일어난 사고 처리계획이 20년 후에나 확정된 것이다.

당시 사고책임자에 대한 형사소송도 이로부터 6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26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었지만 형량이 말도 안 되게 가벼웠다. 법원이 유니언카바이드의 당시 책임자 7명에게 과실치사 협의로 내린 처벌은 ‘징역 2년에 벌금 약 250만 원’이 고작이었던 것. 이들 7명은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고 법원에 항소신청을 했으며, 특히 최고경영자였던 미국인 워런 앤더슨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아 인도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1984년 보팔 사고 희생자 중에는 아기를 사산하거나 유산한 경우가 많고, 그 당시 어린이들이 성장해 출산한 아이 중에는 선천적으로 기형인 경우도 보고 됐다. 기형이 아니더라도 심장질환, 언청이, 정신지체 등 여러 가지 장애를 갖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보팔 대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인구밀집 지역에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을 세우면서 안전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팔 대참사와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는 닮은 점이 있다. 또 주민들에게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과 사고 수습이 허술해 피해를 더 키웠다는 점도 비슷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보팔 대참사와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에서 얻은 깨달음을 잊지 않아야 다시는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이 했던 말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결코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