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에서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그 결과 5명이 사망하고 반경 700m 이내 지역의 숲과 들이 초토화됐다. 부작용도 심각해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가축들도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불산가스가 뭐기에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을까.
불산(또는 불화수소산, hydrofluoric acid)은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를 물에 녹인 액체다. 따라서 이번 사고로 누출된 건 엄밀히 말해 불화수소가스다. 불화수소는 수소원자 하나와 불소원자 하나가 만나 만들어진 분자로(분자식 : HF), 끓는점이 19.5도로 낮아 액화되기 쉽다. 불화수소는 물과 잘 섞이기 때문에 가스를 마시면 기관지와 폐 조직에 금방 흡수돼 불산이 된다.
불산의 구성 원소 가운데 하나인 불소는 우리 귀에 익숙하다. 불소를 넣은 치약 때문이다. 하지만 불소만큼 화학자들을 애먹인 원소도 없다. 불소 연구의 출발점은 16세기 형석 발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광물학자인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는 금속 제련을 쉽게 해주는 광물을 발견해 ‘플루오레스(fluores)’라는 이름을 붙였다. ‘흐른다’는 뜻의 라틴어 ‘fleure’에서 따온 말로 이 광물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녹아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뒤에 이 광물의 이름이 ‘fluorspar’ 또는 ‘fluorite’, 즉 형석이 됐다.
17세기 독일의 유리장인인 하인리히 슈반하드는 유리병에 담은 황산용액에 형석을 넣자 유리가 뿌옇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현상을 이용해 유리표면을 가공할 때 이 용액을 썼다. 18세기 스웨덴의 화학자 카를 셸레는 슈반하드의 발견을 면밀히 검토했는데, 그 결과 이 용액이 유리를 부식시킨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형석이 황산에 녹으면서 어떤 산으로 바뀐다고 추측하고 이를 ‘불산’이라 불렀다.
이후 불산은 점차 화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프랑스의 과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도 그 중 한명이었다. 1810년 앙페르는 불산의 특성이 염산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여기에는 염소와 비슷한 미지의 원소가 들어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형석이 칼슘과 이 미지의 원소로 이뤄져 있다고 추측했다(훗날 형석의 화학식이 CaF2로 밝혀졌다!).
앙페르는 자신의 생각을 당시 최고의 화학자였던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에게 편지로 알렸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데이비도 결국은 수긍해 1811년 이 미지의 원소를 fluorite(형석)에서 따와 ‘fluorine(불소)’이라고 명명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불소를 순수한 상태로 분리해서 정말 새로운 원소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앙페르와 데이비는 물론 많은 화학자들이 실험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불소는 워낙 반응성이 커서 불소분자(F2)가 만들어지자마자 금방 다른 원소와 반응해 불소이온(F-)의 염(salt)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불산으로 실험하던 화학자들은 몸이 상하거나 심지어 죽기도 했다. 앙페르도 불산 실험으로 몸이 상했고, 실험을 많이 했던 데이비는 눈과 손가락을 다쳐 고생했다. 프랑스의 화학자 제롬 니클레는 불산가스를 과도하게 흡입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불소를 분리하려다가 죽은 화학자들을 기려 ‘불소 순교자(fluorine martyrs)’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소 분리의 영예는 프랑스의 화학자 앙리 무아상에게 돌아갔다. 1886년 무아상은 전기분해를 이용해 불소(F2)기체를 얻는데 성공했다.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이 불소의 공격을 견딘다는 것을 운 좋게 발견해 이 합금을 전극으로 쓴 결과다. 이 업적으로 무아상은 190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불산이 우리 몸에 들어와 어떤 일을 벌이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결과로 이어지는 걸까. 일부 언론에서는 불산이 황산이나 염산처럼 강산이기 때문에 독성을 띠는 것처럼 설명하지만, 사실 불산 자체는 강산이 아니다. 다만 농도가 높아질수록 산성이 급속도로 커진다. 불산이 위험한 건 오히려 산성이 크지 않아서이다. 불화수소(HF) 대부분이 불소이온(F-)으로 해리되지 않아 조직에 침투하기 쉽기 때문이다. 세포막은 지질이기 때문에 이온은 잘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불산 농도가 아주 높지 않다면 처음 접했을 때는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불소 누출사고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몸에 이상이 느껴졌을 것이다.
불산이 혈액과 조직으로 침투하면 작업을 시작한다. 체내에 들어온 불산의 일부는 수소이온과 불소이온으로 해리되는데, 불소이온이 체내 칼슘이온(Ca2+)이나 마그네슘이온(Mg2+)을 만나 불용성 염을 만든다. 이렇게 불소이온이 소모되면 불산이 또 해리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결국 불산이 전부 해리된다.
불소이온이 뼈에 도달하면 뼈를 이루는 칼슘을 빼낸다. 불소이온과 뼈의 칼슘이온이 만나 생기는 염의 화학식은 CaF2, 바로 형석이다. 결국 우리 몸 안에 미세한 돌가루가 쌓이는 셈이다. 게다가 체내 칼슘이온과 마그네슘이온 농도가 떨어지면서 몸에 이상이 생긴다. 특히 체내에서 중요한 생리작용을 하는 칼슘이온이 결핍되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칼슘이온은 다양한 생체신호를 전달하는 고리다. 세포끼리 붙어있게 하는데도 관여하며, 혈액 내 칼슘이온 농도는 신경세포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 갑자기 불산이 체내로 들어와 칼슘이온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면 호흡근육이 굳어져 질식사한다. 때문에 인체는 체내 칼슘이온농도를 엄격하게 조절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얘기를 보면 불소는 절대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원소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몸에는 불소가 꽤 존재한다. 물론 불소이온 또는 그 염의 형태로 말이다. 혈액의 불소 농도는 0.5ppm(1ppm은 100만 분의 1) 정도이고 연조직은 0.05ppm 정도 된다. 뼈에는 무려 200~1200ppm이 들어 있어 다 합치면 3~6그램이나 된다.
실제로 불소는 우리 몸이 건강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한다. 불소의 독성은 불소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불소가 과잉으로 몸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불소 대부분은 뼈와 이에 들어있다. 뼈는 무기질 성분이 45% 정도인데 무기질의 주성분은 칼슘과 인산으로 이루어진 염(인산칼슘)이다. 여기에 불소가 섞여 들어가면 인산칼슘 일부를 불화인회석(fluoroapatite)로 바꾸고, 그 결과 뼈가 튼튼해진다.
200여 년 전 불산을 연구하다 새로운 원소의 존재를 확신한 앙페르는 자신의 편지에 동의한 데이비가 명명한, 플루오라이트(형석)에서 따온 플루오린(불소)이란 원소명 대신 다른 이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냥 가자”는 당대 최고 화학자 데이비의 반응에 포기해야 했다. 불산을 연구하다 혼쭐이 난 앙페르가 제안한 원소 이름은 ‘프쏘린(phthorine)’으로 그리스어 ‘프쏘로스(phthoros)’에서 따왔다. 프쏘로스는 ‘파괴하다’라는 뜻이다.
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ISTI와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 유전체 지도 완성의 의미 (KISTI) (0) | 2012.11.22 |
---|---|
고혈압의 또 다른 증상, 뇌의 ‘노화’ (KISTI) (0) | 2012.11.21 |
추우면 왜 잠이 올까? (KISTI) (0) | 2012.11.19 |
천식․아토피 완치법 나온다 (KISTI) (0) | 2012.11.16 |
교활한 난자와 2등 정자의 만남, 임신 (KISTI) (0) | 2012.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