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뚱뚱하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개그콘서트’의 네 가지 코너. 이 코너의 백미는 ‘뚱뚱한 남자’의 대변인으로 나서는 개그맨 김준현 씨다. 빨간 넥타이가 빈약해보일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가진 그가 단상에 올라 손수건을 꺼내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포복절도한다. 뚱뚱한 이에 대한 오해를 늘어놓는 그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온몸을 적셔버릴 듯 흐르는 땀이 뚱뚱한 자의 비애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이 깊어질수록 김준현 씨와 비슷한 몸매를 가진 사람들은 괴롭다. 두꺼운 피부와 늘어난 피하지방 때문에 남들보다 더 덥고 땀도 많이 흘리기 때문이다. 특히 땀은 흘리는 모습이 지저분해 보이는데다 마르는 과정에서 냄새도 나기 때문에 이들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된다.
그러나 사실 땀은 인간에게 고민거리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다. 몸의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화과정에도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또 특정 부위에서 나는 땀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더운 환경에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게 체온조절은 필수적이다.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동물이 쓰는 방법은 복사와 대류, 전도, 증발이다. 예를 들어 동물의 털이나 새의 깃털은 들어온 열을 붙잡아서 다시 주변 환경으로 내보내는 복사 형태로 배출한다. 사람의 머리털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머리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보호한다. 또 땅을 밟는 발 등을 통해 몸으로 들어온 열을 전도 형태로 내보낸다. 대류에 따른 공기의 흐름은 몸 주변의 열을 빼앗아간다.
그런데 기온이 높아질수록 체온과 외부 온도의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위에 설명한 세 가지 방법으로 내보낼 수 있는 열의 양이 줄어든다. 결국 땀을 흘리고 이를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 가는 ‘증발’의 방법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또 동물이 활동을 더 많이 할수록 신체 내 대사가 많이 일어나서 큰 근육을 중심으로 많은 열을 발생시킨다. 이때 증발을 통해 열을 효과적으로 내뿜는 게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 된다.
동물에 비해 털이 없는 인간에게 땀은 더 중요한 냉각 체계다. 인간의 몸을 식히는 땀은 주로 ‘에크린 땀샘’에서 나오는 물처럼 맑은 땀이다. 대량의 땀을 내보내고 빨리 증발시키는 에크린 땀샘은 신체 표면에 200~400만 개 정도 있으며, 평균 밀도는 1㎤ 당 150~340개 정도다.
반면 포유류의 피부에는 ‘아포크린 땀샘’이 많다. 아포크린 땀샘은 뿌연 점액질의 땀을 적게 배출하며, 이 땀이 건조되면 끈적거리는 방울 모양이 된다. 말 같은 동물은 아포크린 땀이 피지샘에서 나오는 피지와 결합해 거품 형태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체온을 조절하기도 한다. 인간 피부 중에는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귀 부분에 아포크린 땀샘이 소량 분포하고 있다.
인간이 에크린 땀샘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다른 동물들이 그늘에서 쉬는 낮 시간 동안 활동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먹이를 구하거나 도구를 만들 재료를 찾기 위해서 인간은 멀리까지 이동해야 했다. 결국 우리 조상은 트인 환경에서 오랫동안 빠르게 움직여야 했으므로 몸을 효과적으로 식힐 방법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뇌의 크기가 커졌다는 것이다. 신체 기관들이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온이 일정해야 하는데, 특히 뇌는 온도에 취약하다.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대화와 사고에 문제가 생기며, 뇌의 온도가 섭씨 40도를 넘기면 의식이 혼미해진다. 섭씨 42도를 넘은 상태가 계속되면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른다. 진화를 거치면서 인간의 뇌는 점점 커졌고, 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다량의 땀을 흘려 동맥 속에 흐르는 혈액의 온도를 조절하고 뇌를 효과적으로 식히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은 활동량이 늘어나고 뇌가 커지기 시작한 직립보행 시기 즈음부터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아포크린 땀보다 에크린 땀을 잘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실제로도 지구에서 에크린 땀을 가장 잘 만드는 동물이 인간이다.
땀의 또 다른 기능은 감정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에크린 땀샘은 열에 반응해 땀을 만들고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손바닥과 발바닥은 예외다. 이곳은 우리 몸에서 가장 오래된 에크린 땀샘이 있는 곳으로, 열이 아니라 ‘정서적 자극’에 반응한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는 순간, 우리는 손이 차갑고 축축해진 걸 느낄 수 있다. 또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응원하는 야구팀이 역전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볼 때 손에 땀을 쥐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손바닥에 있는 에크린 땀샘이 불안과 초초, 흥분의 감정을 반영해 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안이나 흥분을 느끼면 교감신경계가 약하게 자극되고, 손바닥에 있는 에크린 땀샘에서 땀이 배출된다. 날씨나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흐르는 땀이라고 해서 이런 땀을 ‘감정적 땀’이라고도 한다.
손바닥과 발바닥의 땀샘이 왜 감정에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오래 전 인간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살 때 이런 특징이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있다. 작은 영장류의 손과 발에 있는 지문에 습기가 약간 있으면 피부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예민해진 촉각은 주변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유리하므로 나무 사이를 더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손바닥과 발바닥에 있는 땀샘이 자극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감정적 땀은 현대 법의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범죄 용의자의 손바닥에 땀이 난다면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땀샘이 활동해 손과 발이 축축해지면 전기전도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이용해 용의자의 불안 정도를 추정하거나 거짓말 탐지기를 만들기도 한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오래 볼수록 소중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땀과 땀샘이 바로 그렇다. 땀샘과 거기서 나오는 땀은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는 땀 덕분에 낮에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고 뇌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 이렇듯 땀은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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