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대인의 유물을 보면 저걸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이나 외계 문명이 그 유물을 만들었거나 적어도 유물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주고 떠났다고 믿고는 한다.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세계 몇 대 미스터리’라고 검색하면 아직도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과거의 유산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신과 외계인을 배제하고,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최근 이스터섬의 거대 석상을 어떻게 옮겼는지,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썩지 않는 단검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비밀을 풀 가설이 제시됐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아이
남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화산섬인 이스터섬에는 섬의 장관을 이루는 거대한 석상 ‘모아이’가 있다. 작은 섬에 길이 20m, 무게 90t의 엄청나게 거대한 석상 1000여 개가 해안가에 몰려 있어 외계인이나 와칸다 같은 초고대문명이 만들었다는 설이 떠돌았다.
초자연적인 설명을 뒤로 제쳐놓고, 가장 궁금한 질문은 이스터섬 선주민들은 어떻게 모아이를 채석장에서 해변까지 운반했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가설이 제기됐는데, 그중 하나는 나무를 베어서 모아이 밑에 깔아 운반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과거에 이스터섬에는 야자나무가 밀림을 이룰 정도로 무성했다는 증거가 있다.
더 재밌는 가설도 있다. 일명 ‘뒤뚱거리며 걷기 가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아이 석상을 3개의 밧줄로 묶은 뒤 양쪽에서 교대로 잡아당기면 석상이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2년 칼 리포(Carl Lipo)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캠퍼스(CSULB) 인류학과 교수 연구팀은 가설을 입증하고자 약 4.4t에 달하는 콘크리트 석상 모형을 제작해 하와이의 쿠알루아 렌치에서 직접 실험에 나섰다.
18명으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석상이 엎어지지 않도록 석상의 뒤쪽에서 밧줄을 잡아당겼고, 나머지 두 밧줄은 석상의 양쪽에 묶어 구령에 맞추어 교대로 끌었다. 사람들이 오른쪽 밧줄을 잡아당기면 모아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이에 왼쪽으로 밧줄을 당기면 아랫부분이 빙글 돌면서 조금씩 앞으로 간다. 이 실험으로 연구팀은 석상을 한 시간에 약 100m 정도 옮기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아이 가설을 로봇팔과 드론 실험으로 다시 한번 입증했다. 서정원 홍콩 과학기술대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철사로 모아이처럼 밑이 둥글고 넓은 구조를 만들고 그 위로 기둥을 세웠다. 그런 다음에 연구진은 이 철사 모아이에 줄을 연결하고 로봇팔로 양쪽을 번갈아 당기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철사 모아이는 과거 실험처럼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드론 2대를 이용해 마찬가지 방식으로 철사 모아이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가 무거운 물체를 옮기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뒤뚱거리며 걷게 되면 물체의 일부가 항상 지면과 접촉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로봇이나 드론은 물체 무게의 일부만 지탱하면 된다. 예를 들어 1kg의 물체를 들기 위해 100%의 힘이 필요하다면, 이번 실험처럼 물체를 움직이면 20%의 힘만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단검의 출처는 어디인가
투탕카멘의 단검 미스터리도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1925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황금 마스크만큼 큰 관심을 받았던 유물은 단검 2자루였다. 3000년이 지나도 조금도 녹슬지 않아 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다. 2016년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과 피사 대학, 이집트 박물관 연구팀이 해당 단검을 X선 형광분석법을 이용해 구성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 철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즉 운철임이 밝혀졌다. 운철은 철의 함유량이 많고 니켈 같은 광물질이 표면을 뒤덮고 있어 녹을 방지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철을 대량으로 제련하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인 셈이다.
학자들은 고대 문서를 분석해 이 단검이 이집트에서 제조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라이벌이었던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미타니 왕국으로부터 유입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집트 신왕조 시대 총독들이 왕에게 보냈던 공문서인 ‘아마르나 문서(Amarna letters)’를 분석해 확인한 것인데, 문서에는 당시 미탄니 왕국의 투라타 왕이 결혼 선물로 아멘호텝 3세(기원전 1417~1379년)에게 황금 칼집으로 장식된 철 단검을 비롯한 여러 물건을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아멘호텝 3세는 투탕카멘 왕의 할아버지다.
과연 문서의 내용이 진짜일까? 최근 일본 연구팀은 여러 실험을 통해 이 단검이 운철로 되었으며 이집트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것일지 모른다는 점을 입증해 국제학술지 ‘운석&행성과학(Meteoritics & Planetary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비파괴 검사로 단검의 성분과 제련 방법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단검 날의 표면에 분포된 니켈 원소가 운석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비트만슈테텐(Widmanstätten) 무늬 모양으로 분포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트만슈테텐 무늬는 우주에서 지구로 낙하한 운석의 절단면에만 나타나는 직선 교차 패턴이다. 비트만슈테텐 무늬와 니켈 성분의 함유량을 고려하면 이 단검의 소재는 옥타헤드라이트(octahedrite)라는 운철로 8면체 구조를 가진 철-니켈(Fe-Ni)이 합금된 것이다.
또한 단검이 섭씨 95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제련됐으며 칼자루의 접착 재료로 석회를 원료로 한 석고가 쓰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집트에서 석회가 사용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30년) 이후였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석회를 사용해 접착한 황금 칼자루는 외국에서 수입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투탕카멘의 단검은 아마르나 문서에 적힌 대로 투라타왕의 선물이었으며, 가문의 가보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모아이와 투탕카멘의 미스터리를 설명할 수 있는 대안 가설이 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신이나 외계인이라는 가설은 해결해야 할 질문이 너무 많고, 또 너무나 편리한 가설이기 때문에 적어도 현재로서는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제시한 결론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낭만은 없겠지만 말이다.
글: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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