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유럽 기사가 타던 말, 조랑말보다 작아… 중요한 건 크기보다 ‘성능’

조조다음 2022. 4. 6. 06:30
전열을 가다듬은 기사들과 멋지게 연설을 하는 지휘관, 그리고 이에 맞서 돌격에 대비하는 적군의 모습….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세 전투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멋들어진 모습이 실제로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최근 나왔다. 그 핵심은 사람이나 무기가 아니라
바로 ‘말’이다.

영국 엑시터대학교 연구진은 중세 유적지 171곳에서 발굴된 말뼈를 관찰했다. 서기 300~1650년 사이 생존했던 말 1,964마리가 분석 대상이 됐다.

그 결과 실제 중세 전투 속 기사들이 타던 말은 144㎝ 수준, 즉 오늘날의 조랑말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오늘날 각종 콘텐츠에 등장하는 군마는 173∼183㎝ 수준의 키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중세 시대 군마들이 쓸모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연구진은 이들 말이 크기는 작을지언정 다양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것으로 보았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13~14세기 사람들이 말 연구에 많은 돈을 쏟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크기는 다소 작을지언정, 장거리 공격, 마상 시합 등 그 목적에 맞춰 당시 최고의 기술로 점차 육성, 개량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나폴레옹의 애마로 유명한 마렝고 역시 그 키는 14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잘 알려진 그림 속 멋진 모습은 나폴레옹을 포장하기 위해 잘 꾸며진 이미지다.
특히 작은 말의 무서움을 널리 알린 것은 한때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기병이다. 이들이 사용하던 몽골말은 체구도 작고, 순간 속도도 느려  도저히 중동이나 유럽의 말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신 몽골말은 지구력과 체력이 좋고 인내심도 높아 군마로서의 자질이 뛰어났다. 기온 변화에도 강하고, 먹이도 상대적으로 적게 먹기에 긴 원정을 떠나는 몽골군의 발이 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췄다.
우리나라에도 과하마(果下馬)라고 불리는 토종말이 있었다. 과하마는 사람이 말을 타고도 과일나무 아래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의미다.
실제 예전의 토종말은 키가 매우 작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월성 해자 유적에서 출토된 말뼈를 분석한 결과, 5세기 경 말의 평균 높이는 128㎝로 추정됐다. 

이런 과하마의 짧은 다리는 산이 많은 우리 지형에 놀랍도록 적합했다. 체격에 비해 힘도 좋아 중국과의 주요 교역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후 품종 개량 등을 통해 말의 크기는 점점 커지게 됐다. 비록 전쟁, 수송 등 예전의 쓰임새는 없어졌지만, 작은말은 레저용, 애완용으로 남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