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있음을 증명하기 보다는 없음을 지키는 게 더 쉽다

조조다음 2022. 1. 20. 06:30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산자와 죽은자의 대화이다.  - 9쪽

 

보이는 광경을 그래도 담았다는 사진도 촬영하는 사람의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로서 애초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  - 26쪽

 

부정론자들에게 증거의 존재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증거 그 자체가 아니라 증거의 정치인 것이다.  - 36쪽

 

있음을 증명하기 보다는 없음을 지키는 게 더 쉽다. 실증주의자들의 유리한 무기다.  - 48쪽

 

국립현충원에는 정국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다. 정국을 일본식으로 읽으면 야스쿠니다.  - 78쪽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방관의 도덕적 당당함이 아니라 묵인하여 연루된 주체로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만이 피 묻은 과거와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다.  - 86쪽

 

기억은 역사의 적이다. 공식적인 역사를 만들고 지키려는 자들이 불편한 기억들은 자꾸 지우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93쪽

 

사회주의 이념 아래(반유대주의)에는 좀 더 통속적인고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 체제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반유대주의를 내세워 인종적 민족주의를 부추겨 체제의 정통성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 120쪽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동아시아의 기억공간으로 들어오면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해묵은 갈등이라는 유럽의 역사적 맥락이 탈구되고 일본의 원폭 피해자의식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이용되는 과정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 130쪽

 

자신이 아프다고 타자의 아픔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타자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억의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한다.  - 144쪽

 

갈등을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은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161쪽

 

한 사회의 기억문화가 자기변명 중심으로 구성되는가 아니면 자기비판 중심으로 구성되는가 하는 것은 큰 차이다.  - 179쪽

 

서양 지식인들이 유독 히틀러의 나치즘에 분노하는 것은 아프리카를 문명화하려 했던 무솔리니와 달리 나치는 유럽인을 문명화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203쪽~204쪽

 

19세기와 20세기의 민주주의가 저지른 학살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기억할 때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향한 21세기의 고민이 길을 찾을 것이다.  - 206쪽

 

홀로코스트는 지난 500여년 동안 식민주의가 전세계 선주민들에게 행사해온 폭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선주민이 아니라 유럽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폭력의 양상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 209쪽

 

나가사키의 탈역사화된 기억은 침략과 가해의 기억은 없고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국임을 강조하는 논리구조다.  - 232쪽

 

개별 가해자가 민족의 이름으로 희생자 집단에 숨어 희생자로 둔갑하는 기억의 마술은 위험한 속임수다.  - 238쪽

 

요코이야기는 역사적 감수성이 배제되고 어린 소녀의 입장에서 가해와 희생을 이분법적으로 대입시켜 역사적 책임을 희석시켰다.  - 248쪽

 

개인의 차원에서 아무리 생생하고 진정한 기억이라 해고 탈역사화, 탈맥락화된다면 언제든 정치적으로 조작되어 기억전쟁의 도구로  전략될 수 있음을 분명히 자각해여 한다,  - 256쪽

 

나는 그를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가 없다 . 기차 안에서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니까 그는 내가 아니라 어느 이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셈이며 그러니 나 말고 그 이름 없는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게 옳다.  - 260쪽

 

누군가가 저지른 죄를 용서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피해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다. 이미 억울하게 죽은 자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살인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264쪽

 

전쟁상황에서는 적도 아군도 승자도 패자도 모두 희생자이고 누구에게도 죄를 물을 수 옶다는 논리는 과거에 대한 성찰적 기억을 신기루처럼 소멸시킨다. 이들은 승자의 정의가 희생자인 자신들을 죄인으로 모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 269쪽

 

자타가 공인하는 도덕적 정당성보다는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눈 양심의 목소리가 훨씬 더 소중하다.  - 277쪽

 

마지못해 잔악한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된다.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해법이 될 수도 있다,  - 289쪽

 

집합적 유죄의 함정에 빠져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곤란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 면죄부를 준다는 것도 딜레마다.  - 292쪽

 

기억전쟁, 임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