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터키 이민자 출신의 연인이 독일의 한 등기소에서 간단히 결혼식을 치렀다. 아내는 면사포 대신 실험실로 돌아가 하얀 연구복을 입었다. 남편 역시 턱시도를 입는 대신 아내와 같이 연구실로 돌아가 실험에 매진했다. 결혼식을 포기하고 연구에 매달린 이들은 독일의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를 설립한 우구르 사힌, 와즐렘 튀레지 박사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이 밝혀진 지 1년도 채 안 돼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와 함께 mRNA(메신저 RNA)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낸 주역이다. 세계 최초의 mRNA 백신을 만들어낸 이들의 꿈은 ‘암 치료’였다. 1990년대 독일 홈부르크 대학에서 처음 만난 부부는 화학요법으로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려운 암 환자를 보며 절망했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을 찾고자 뛰어든 게 mRNA 연구였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빠르게 개발된 백신이라는 명성 뒤에는 30년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한 우물’을 판 연구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mRNA 주입 후 사이토카인 생산해 쥐 종양 제거
‘mRNA를 활용한 암 치료’라는 이들의 꿈은 조금씩 길이 보이고 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는 바이오엔테크 연구진이 쥐 실험에서 mRNA 기술을 이용한 암 치료법을 통해 종양을 제거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들은 결장암과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있는 쥐 20마리에게 자신들이 설계한 mRNA 칵테일을 주입했다. 이 mRNA 칵테일은 암과 싸우는 면역체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루킨, 인터페론-α 등을 포함해 4종의 ‘사이토카인’을 만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사이토카인이란 바이러스나 세균 등 외부 침입자가 몸에 들어오면 면역 세포를 자극해 병원체와의 싸움을 시작하게 하는 중요한 면역 단백질이다. 하지만 반감기가 매우 짧아 사이토카인 자체를 치료제로 만들어 환자에게 투입하기는 어려웠다.
연구진이 종양에 mRNA 칵테일을 주사하자, 종양 부근의 면역 세포들이 사이토카인을 대량생산하면서 면역 반응이 활발히 일어났다. 그 결과 모든 쥐의 종양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17마리의 쥐에서는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 공동 연구회사인 프랑스 제약업체 사노피가 진행한 또 다른 실험에서는 흑색종과 폐암을 동시에 앓고 있는 쥐에게 치료법을 적용했다. 이때 흑색종에만 mRNA를 투여했는데도 불구하고 폐암 세포까지 억제되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 이들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도입했다.
DNA의 정보를 단백질 공장에 전달하는 mRNA
그렇다면 mRNA란 도대체 무엇일까. mRNA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RNA에 대해 알아야 한다. RNA(리보핵산)이란 DNA(디옥시리보핵산)와 함께 우리 몸의 대표적인 유전물질이다. mRNA는 RNA 중에서도 전달자(messenger) 역할을 해 ‘메신저 RNA’, ‘전령 RNA’라고 불린다.
DNA는 단순하게 표현하면 ‘생명의 설계도’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세포의 핵 속에 들어있으며, 개인마다 다른 고유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유전 정보란 인간의 몸속 장기를 포함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모습과 조직을 구성하는 정보이다. 즉 DNA에는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적재적소에 만들어내기 위한 정보가 담겨 있고, 이 정보가 단백질 공장(리보솜)에 전달되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mRNA는 핵 속에 있는 DNA의 생명 설계도 중 필요한 유전 정보를 복사하고 해석한 뒤 이를 세포핵 밖으로 가지고 나와 단백질 공장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mRNA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단백질 공장은 단백질을 구성물질인 아미노산을 소환하고, 이 아미노산을 설계도에 맞게 조합해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DNA 정보가 mRNA로 옮겨가는 과정을 ‘전사(transcription)’라고 부르며, 이후 단백질이 생산되는 과정은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한다.
mRNA 기술로 맞춤형 치료 가능
또 다른 mRNA 백신 개발의 주역인 모더나는 이러한 mRNA의 ‘역할’을 활용해 ‘암 치료 백신’을 연구 중이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와는 달리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만들어내는데, mRNA 암 백신을 투여해 암 특이적인 단백질이 체내에서 생성되면 면역 세포가 암 단백질을 인지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암세포 단백질은 환자마다 다를 수 있어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mRNA는 설계가 비교적 쉬워 개인 맞춤형 암 백신 생산이 가능하다.
mRNA가 ‘유전자 전달체’ 역할을 하는 만큼 유전자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 유전 정보를 우리 몸 안에 전달할 수 있어 우리 몸에 부족한 유전자를 몸 안에 넣어주는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mRNA는 설계와 생산이 기존 치료제들에 비해 쉽고 빠른 만큼 플랫폼만 잘 갖춰 놓으면 빠르면 수개월 안에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 일례로 지난해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가 공개된 후 모더나가 1상 임상시험에 필요한 백신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25일에 불과했다. 즉 질환의 유전적인 원인만 정확히 파악되면 바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mRNA는 시장 규모가 작고 개발 비용과 시간은 길어 개발이 어려웠던 희귀난치병 질환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
글: 이새봄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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