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약물 도핑 말고 기술 도핑 있다 (KISTI)

조조다음 2021. 8. 30. 06:30

2020년 도쿄 올림픽이 한창이다. 전 세계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기 때문에 메달을 따는 것은 정말 신의 가호라고 불릴 정도다. 단 한끗 차이로 메달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나 판정을 둘러싸고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약물 도핑이다. 호르몬제는 일시적으로 집중력이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선수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있는 선수 중 일부를 임의로 지정해 약물 검사를 한다.

 

첨단 기술의 선수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그런데 도핑에는 약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쓰는 장비도 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운동 장비들도 개량되고 있는데, 이 장비를 쓰는 선수와 쓰지 않는 선수 간에 기록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기술 도핑’이라고 부른다.

 

최근 기술 도핑 논쟁을 불러온 사례는 나이키에서 제작한 러닝화다.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최초로 42.195㎞ 코스를 1시간 59분 40초만에 주파했다. 7명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린 비공인 기록이지만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2시간 벽을 깬 것이다.

 

전문가들은 킵초게의 기록 갱신을 오로지 킵초게의 러닝 능력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킵초게는 나이키가 선수만을 위해 특수 제작한 러닝화를 신었는데 밑창 중간에 탄소섬유로 만든 판이 스프링 효과를 내는 운동화로, 뛰는 힘을 10% 이상 크게 높여준다고 한다. 스프링 효과 덕분에 착지 후 도약력을 높여주며 무게도 180여 g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내리막길을 뛰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2~2019년 10km, 하프마라톤, 마라톤 등 3개 종목에 출전한 전 세계 남녀 엘리트 육상선수들의 최고 기록을 분석한 결과 나이키에서 제작한 특수 러닝화를 신은 2017년 이후 마라톤 선수들의 점점 단축됐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여자 선수에게서 두드러졌는데, 이 러닝화를 신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한 선수는 자신의 기록을 2분 10초 줄여 1.7%의 기록 단축 효과를 봤다. 기록을 2.3%까지 단축한 선수도 확인됐다. 마라톤계에서 이 정도 단축 기록은 엄청난 것이다.

 

이에 세계육상연맹은 특정 선수만을 위해 만든 운동화는 사용할 수 없다며 킵초게가 촉발한 논란을 해소하려고 했다. 이에 더해 공식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동화 규격도 만들었다. 세계육상연명은 새 규정에서 “신발 밑창의 두께는 40mm 이하여야 하며, 탄소섬유판은 1장만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섬유판이 1장인 기존 시판 제품은 사용할 수 있지만 섬유판이 3장으로 알려져 있는 ‘킵초게 신발’은 안 된다고 천명한 것이다.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복잡한 문제

 

이런 기술 도핑 논란은 이제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전신 수영복 논란이 있다. 폴리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진 이 전신 수영복은 부력을 높이고 물의 저항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선수들이 폴리우레탄 전신 수영복을 입기 시작하자 2009년 로마 수영선수권대회 당시 43개의 세계신기록이 쏟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선수들은 전신 수영복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전신 수영복은 2010년 퇴출됐다.

 

이런 기술 도핑은 반드시 규제해야 하는 걸까? 킵초게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기술의 도움도 받는다. 기술이 점점 발전하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스포츠 선수도 기술과 발을 맞춰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고 그 그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뛰어넘도록 도와줄 것이다. 기술의 진보와 스포츠 능력 향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정원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