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에 유일한 대작인 ‘원더우먼 1984’가 찾아왔다. 개봉 이후 계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원더우먼 1984는 고고학자로 살고 있던 원더우먼이 다시 한 번 적과 맞서 싸워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원더우먼의 무기다. 히어로답게 원더우먼은 다양한 무기를 활용한다. 여기서는 원더우먼의 대표적인 무기 세 가지와 그 속에 숨은 과학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진실의 올가미와 거짓말 탐지기
먼저 원더우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는 ‘진실의 올가미’다. 진실의 올가미는 절대 끊어지지 않으며, 묶이면 무조건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이 아닐 경우에는 신체적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 무기에는 흥미로운 탄생 배경이 있다. 바로 원더우먼 캐릭터를 만든 원작자인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 실제로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1915년 감정에 따라 혈압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현대적인 거짓말 탐지기를 고안해 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 돼 동공이 커지고 땀이 나며, 심장 박동과 호흡이 빨라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사람 몸에 센서를 부착한 뒤 호흡과 피부의 전기반응, 심혈관 반응 등을 동시에 측정해 그래프 파형으로 나타내는 것이 거짓말 탐지기(폴리그래프)다. 거짓말을 했을 경우 평상시에 비해 그래프의 변동이 심해진다. 이를 통해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판별한다.
거짓말 탐지기는 점점 수사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정확도도 90%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생리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도 그래프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보통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증거로서의 효력은 없고 참고 자료로만 활용된다.
최근에는 거짓말 탐지기와 함께 바이브라이미지(VibraImage) 탐지기 기술이 개발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바이브라이미지는 전정기관의 감정반사를 기반으로 사람의 감정 상태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전정기관은 귀 안쪽에 위치한 기관으로, 회전 운동을 감지해서 몸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전정기관은 감각기관과 자율신경계 등 몸 전체에 연결되어 있어 사람이 자극에 반응하면 머리를 반사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를 이용한 것이 바이브라 이미지 기술이다. 거짓말에 대한 사람의 반응을 카메라로 촬영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얼굴 색, 주변의 색, 흥분도 등을 그래프로 나타내는 것이다. 진술자의 신체에 각종 측정기를 붙이지 않고 얼굴만 찍을 수 있어 간편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바이브라이미지 외에도 뇌파(EEG)를 측정하거나 자기공명 뇌영상촬영기법(fMRI)으로 자극을 주면서 직접 뇌를 촬영해 거짓말을 탐지할 수도 있다.
굴복의 팔찌와 방탄 능력을 가진 신소재
두번째 무기는 ‘굴복의 팔찌’다. 아테나의 이지스 방패로 만들어진 이 팔찌는 그 어떤 총알도 뚫지 못해 튕겨 나가고, 팔을 교차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사돼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다.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구를 실제로 만들 수 있을까?
‘꿈의 물질’이라고 불리는 그래핀이 첫 번째 후보다. 2014년 이재황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그래핀이 강철보다 10배 이상의 방탄 효과를 갖고, 현재 방탄복에 널리 쓰이는 케블라 소재보다 2배 이상 튼튼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30~300장을 겹친 그래핀에 지름 1㎛의 유리 탄환을 실제 총의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충돌시켰더니 탄환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핀에서 운동에너지가 전파되는 속도가 총알의 속도보다 약 22배 빨라 순식간에 그래핀 전체에 분산됐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그래핀은 100만 장을 겹치더라도 두께가 0.3mm밖에 되지 않아 실제 방탄복과 같은 두께로 만들게 되면 방탄 능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팀은 복합 금속 폼(CMF)이라는 특수 금속 소재를 개발하고 관통력이 강한 철갑탄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CMF는 강철, 티타늄, 합금 등으로 만든 테두리에 속이 빈 구 모양을 하고 있다. 연구팀은 세라믹과 얇은 알루미늄 판 사이에 CMF 소재를 끼운 뒤 초속 500~885m의 속도로 총알을 발사했다.
그 결과 CMF는 충돌 에너지의 72~75%를 흡수했고, 총알은 관통하지 않고 튕겨나갔다. 또 이 소재는 다른 금속보다 열이나 화염에 잘 견딜 수 있으며, X선과 감마선, 중성자선 등의 방사선도 차단했다. 심지어 가볍기도 해서 같은 방탄 능력을 가진 강철보다 2배나 가벼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소재가 상용화 된다면 더 적은 무게로도 방탄 효과를 낼 수 있고, 군용뿐만 아니라 자동차, 우주 탐사 등 응용 분야가 다양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자 단위로 베는 검 갓킬러와 원자 현미경
원더우먼의 마지막 무기는 제우스가 선물한 검 ‘갓킬러’다. 이름 그대로 전쟁의 신 아레스를 이길 수 있게 만들어진 검으로, 원자 단위로 베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검이다. 현실에서 원자 단위로 베어낼 수 있는 ‘무기’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지만, 원자를 옮기거나 자르는 등의 일은 가능하다. 바로 ‘원자 현미경’ 덕분이다.
원자현미경은 시료와 탐침 원자 사이에 생기는 상호 작용을 이용한다. 캔틸레버라고 불리는 막대 끝에 아주 미세한 탐침이 달려 있는데, 이 탐침을 시료 표면에 가져가면 시료와 탐침의 원자 간에 상호작용이 생겨 탐침을 표면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때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반대로 밀어내는 힘이 생겨 탐침이 휘게 되는데, 이 휘어짐을 레이저 광선의 변화로 측정해 시료의 모습을 그려낸다. 광학현미경의 배율이 수천 배, 전자현미경의 배율이 수십만 배인데 비해 원자현미경의 배율은 최고 수천만 배로 원자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시료와의 상호작용에 따라 마찰력, 경도, 자기력, 전기적 특성 등 다양한 성질을 측정해낼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원자현미경의 탐침을 이용해 원자를 자르고, 원하는 위치로 옮기고,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반도체 공정이나 나노 크기의 구조물을 만드는 ‘나노 리소그래피(nano-litography)’에 활용되고 있다. 만년필을 이용해 글자를 쓰는 것처럼 원자현미경의 탐침을 펜으로 사용해 원자나 분자를 고체 표면에 쓰는 ‘딥 펜 나노리소그래피’ 방법이 가장 널리 쓰인다.
글: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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