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고체연료? 액체연료? 로켓엔진 연료의 세계 (KISTI)

조조다음 2020. 9. 28. 06:30

“5.4.3.2.1.0 점화. 발사!” 머리에 태극 문양을 새긴 발사체가 거대한 연기에 휩싸이더니 순간 기다란 화염 기둥 위로 치솟았다.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센터 발사대의 한복판, 꼭대기에 걸린 태극 문양의 정체는 우리 군 최초의 통신위성인 ‘아나시스 2호(ANASIS-ll)’로, 이 위성은 에어버스사에서 제작되어 지난 7월 21일 스페이스 X사의 팰컨9 로켓을 타고 발사되었다.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용 군사위성을 확보한 기념비적 쾌거이지만, 외국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기술로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우리 우주개발산업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41년 만에 개정된 ‘2020년 한미 미사일 지침’이 새로이 채택되어 우리나라에서도 고체연료 기반 발사체를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액체연료 엔진 개발에 치중될 수밖에 없었던 우주 발사체 연구의 저변이 확대되었다고 평가되는 큰 기회다. 그렇다면 고체연료 엔진을 활용해 달라지는 점은 무엇일까?

 

고체와 액체연료? 로켓엔진의 원리

 

먼저 로켓엔진의 원리를 살펴보자. ‘엔진’이라는 말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전기로 선풍기 날개를 돌리는 힘, 가솔린을 태워 자동차 바퀴를 굴리는 힘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엔진은 무언가를 ‘돌리는 힘’이 원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로켓의 경우는 이와 달리 뉴턴의 운동 제3 법칙 ‘작용-반작용 힘’이 핵심 원리이다.

 

벽 앞에 서서 손바닥으로 벽을 밀어보자. 세게 밀면 밀수록 반대로 벽이 손바닥을 강하게 밀어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때 손바닥이 미는 힘이 작용, 벽이 밀어내는 힘이 반작용이다. 공기를 가득 채운 풍선을 주둥이가 열린 채 공중에 놓았을 때도 작용-반작용을 관찰할 수 있다. 풍선의 탄성력이 풍선을 쭈그러트리며 속의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면, 반작용으로 공기가 풍선을 밀어낸다.

 

풍선이 고무의 탄성으로 공기를 밀어냈다면, 로켓 엔진은 내부에서 엄청난 가스를 만들어내 이를 배출한다. 그리고 이 가스의 반작용으로 추력을 얻는다. 고압의 가스는 압력이 낮은 쪽으로 나가려 하는데 로켓 추진 기관의 맨 뒤에는 노즐이라 불리는 구멍이 있다. 좁은 공간에 모인 가스가 나가려 하니 그 반작용이 매우 강력한 것.

 

엄청난 가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로켓의 연소관에는 연료가 채워져 있는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은 고체연료이다. 다이너마이트의 원료로 유명한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물질이 대표적인 고체연료이다. 고체로켓은 연소관 안에 고체추진제를 채워 넣는데 이 추진제 안에 알루미늄 분말을 넣기도 한다. 이는 알루미늄의 높은 반응성 때문인데, 알루미늄이 고온으로 연소되면서 연소 속도를 빠르게 하기 때문이다. 연료가 빠르게 연소하며 가스를 만들어내면 이것이 로켓 밖으로 배출되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연소관은 고온과 고압에도 잘 견디는 금속 합금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열에는 더 강한 복합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고체연를 사용한 고체로켓은 그 구조가 단순하고 연료를 보관한 채 오랫동안 대기할 수 있으며 비용도 적게 들지만, 한번 점화하면 제어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닌다.

 

반면 액체연료 로켓은 액체 상태의 연료, 연료에 불을 붙게 하는 산화제를 각각 다른 공간에 주입하여 추후 투입량을 제어할 수 있게 구성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연료는 등유이며 산화제로는 플로오린, 질산, 과산화수소 등이 있다. 연소실이라는 제3의 공간에서 이곳에 투입한 연료와 산화제에 불이 붙으면 고온고압의 가스가 발생하고, 이 가스가 노즐로 빠져나가며 로켓이 추력을 얻는다. 액체인 연료와 산화제를 연소실로 보내려면 연료와 산화제의 압력이 매우 높아야 한다. 그래서 연료와 산화제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자 펌프를 사용하는데, 보통은 풍차 같은 터보 펌프를 사용한다.

 

액체연료 시스템에서는 부품 냉각, 순환, 가스 압력과 분출 조절 장치 등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된다. 덕분에 만들기 어렵고 비싸지만, 점화와 소화를 반복하여 유연하게 제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나시스 2호를 쏘아 올린 팰컨9 로켓처럼 재사용 가능하다는 매우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주발사체는 고체와 액체의 혼합

 

실제 우주발사체 개발 현장에서는, 액체연료와 고체연료를 용도에 따라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액체연료를 중심으로 추력을 만들면서도 고체연료로 부스터를 추가해 성능을 높이는 식이다. 2013년 나로호에도 1단에는 액체, 2단에는 고체 부스터가 탑재됐다. 또, 로켓을 발사한 이후 인공위성 같은 작은 비행체를 제어하기 위해서나, 군사용으로 중장거리 미사일을 만들 때처럼 신속히 작은 추력이 필요할 때 고체연료 엔진을 활용한다.

 

비록 국내에서는 기존에 액체연료 위주로 연구가 치중되어있기에, 고체연료를 연구하기 위한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전과제가 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입장벽이 낮고 경제적인 고체 연료의 특징 덕에, 이번의 지침 개정을 계기로 민간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내년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를 발사할 예정이다. 천문학적인 자원이 투입되는 주요 프로젝트인 만큼, 태극기를 단 우주발사체를 우리 스스로 성공적으로 쏘아 올릴 수 있도록 더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면 좋겠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