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하면 아직 미성숙한 존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약하고 생각이 여물지 않아서 어른의 도움과 보호가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어린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무엇이 옳은 생각과 행동인지 고민한다. 이런 사실은 현대 발달 심리학의 실험에서도 입증된다.
어린이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데서 흥미를 느낀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3살에서 4살 연령의 어린이 48명을 대상으로 4주 간격으로 2권의 책을 읽게 했다.
2권의 책은 모두 동물의 생태와 행동에 관한 책이었다. 다만 내용이 서로 달랐는데, 하나는 동물의 신체와 행동이 그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는 책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동물의 신체와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 특징에 대한 설명은 없는 책이었다.
어린이들은 두 책을 모두 좋아했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모든 독서가 끝난 이후 어떤 책이 더 좋았느냐는 물음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동물이 지닌 특징이 어떻게 생존에 기여하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책, 즉 인과관계가 풍부히 설명된 책이 더 좋고 재미있었다는 답이 많았다.
이런 연구는 어린이들이 책 속에서 세상과 생명에 대한 원인과 결과가 맞물리는 설명을 보는 것에서 내적인 보상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은 기쁨을 준다. 더 구체적으로 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해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한다.
연구자들은 “어린이들은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마침내 그 답을 이해하면 세상을 정복했다는 기쁨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어른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도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독서하는 아이 바란다면, 인과관계가 풍부한 책을
부모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 혹은 TV를 보면서 아이들이 왜?, 왜 그렇게 되는 거야? 라고 끊임없이 이유를 묻는 것을 말이다. 가끔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지만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것이 아이의 동기를 고취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동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처음 겪는 경험이나 당혹스런 상황을 마주쳤을 때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주는 것도 좋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주는 것도 인지와 정서적 안정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사랑하던 강아지가 죽거나 친구의 나쁜 행동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슬픔과 분노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린이의 감정을 묘사하는 책을 읽게 하거나, “지금 슬픔을 느끼는 구나”라고 공감해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그런 감정이 어떤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지 아이와 토론하여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좋다. 당연히 이렇게 의견을 나눌 때는 아이의 감정에 대한 인과관계가 담긴 책을 함께 읽는 것이 독서에 대한 흥미를 키우는 데 좋다.
요즘 부모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이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빠져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이나 아이 자체가 아니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에게 맞는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가진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어줄 수 있는 인과관계가 풍부한 책을 읽게 하고 부모와 함께 토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큰 질문, 예를 들어 세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나 스스로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런 질문을 고민하는 책들을 함께 읽는 방식으로 독서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의 마음은 비록 어른보다 풍부하고 복잡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강현 열망을 품고 있다. 아이가 자라서 강하고 단단한 어른, 타인을 배려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어른이 되려면 원인과 결과를 탐구할 수 있는 독서가 필요하다.
글: 정인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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