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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21세기 유토피아’는 노동과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

조조다음 2017. 3. 5. 09:12

〈19〉 노동과 여가의 미래

‘유토피아’(Utopia)는 1516년에 영국의 토머스 모어가 펴낸 책으로, 이 말은 ‘u’와 ‘topia’의 합성어다. ‘u’에는 ‘없다’라는 뜻과 ‘좋다’라는 뜻이 포함돼 있고 ‘topia’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 후에 유토피아라는 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좋은 세상’이라는 의미의 일반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그 당시 유럽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다. 유토피아의 경제기반은 공동 소유제 농업이다. 공동 농장에는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여하기 때문에 하루에 6시간만 일하면 된다. 유토피아는 모든 시민이 노동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활동으로 행복을 구가하는 사회가 된다.

◆1단계 노동: 노동과 소유의 일체

노동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특정한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위한 물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물자는 인간이 자연에 일정한 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시시대에도 나무에 달린 열매를 채취하고, 동물과 물고기를 잡는 행위와 같은 활동이 필요했으며, 농경사회에서는 농어업이 이루어졌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지배와 피지배관계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채취·수렵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당시의 사회에서는 노동의 양식도 다분히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즉 노동하는 사람이 그 결과물을 소유하는 시대이다. 노동과 소유가 일체화된 사회다.

◆2단계 노동: 노동과 소유의 분리

중세사회 봉건제하에서 노동의 담당자는 일반인이었으며 노동자는 봉건영주에게 예속돼 있었다. 봉건제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농토를 소유할 순 없었지만 봉건영주들이 나눠 주는 토지를 받으며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정 생산물을 세금의 형식으로 영주에게 바치게 된다. 그래도 봉건제의 노동자들은 이전의 노예제보다 훨씬 자유로운 인간이다. 자신은 누구 개인의 소유도 아니고 구속을 받지 않는다. 비록 생산물의 대부분을 토지의 소유주인 영주에게 세금으로 바치지만, 적어도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생산물을 가질 수 있다. 양반과 평민으로 구성된 동양의 왕조국가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이 시절의 노동현장에는 노동자와 결과물의 소유자가 분리된 상태였으며, 인간은 노동의 주체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다.

◆3단계 노동: 노동 소유 수단의 3요소 분화

종교개혁 이후의 르네상스와 과학, 예술문화 각 분야의 급속한 변화는 봉건제를 타파하고 시민사회로의 길을 터놓았다. 시민의식이 발달하면서 전문적인 수공업자, 상인 등이 등장하고, 이들은 전문적인 생산수단(토지·공장·기계 등)을 보유해 전체 생산공정을 종합처리하는 공장을 만들게 된다. 근대 시민사회로 접어들며 전문적인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판매망을 갖춘 상공인이 자본을 축적해 주도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생산공장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기계들이 속속 발명되고 분업화가 이루어져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자본가들은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경쟁하게 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자본가 아래에서 노동을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된다. 자신의 노동을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는 노동자와 결과물의 소유자, 그리고 생산수단이 분화된 상태다.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인간의 위치는 생산수단을 이용하는 위치 또는 협조하는 위치라 할 수 있다.

◆4단계 노동: 노동자의 소외

현대 노동의 특징은 생산수단의 고도화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생산수단은 노동자의 보조적인 위치에서 노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은 인간의 직접적인 도움이 없어도 생산공정이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 인간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반도체 공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조립라인에 사람보다 훨씬 많은 로봇이 조립작업을 하고 있는 자동차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이울러 과거에는 주식 거래자들의 아우성으로 요란법석이던 증권시장이 고요 속에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모든 거래가 컴퓨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인간 노동자는 생산현장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노동현장은 결과물의 소유자와 생산수단의 결합으로 작동된다. 즉 인간은 점차 생산의 보조수단 또는 불필요한 존재가 돼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누가 의도해 발생한 일이 아니다.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일으키고 있는 변화일 뿐이다. 더욱이 효율의 극대화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사상하에서 인간의 위상은 더욱 왜소하게 줄어들고 있다.

◆노동의 한계: 인간 역할에 대한 질문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소외되는 시대에는 인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가지게 된다. 생산수단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때문에 많은 실업이 발생한다. 일부에서는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산업혁명 시절에 생산수단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AI 소프트웨어가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과거 로봇 등의 하드웨어가 일자리를 대체하던 시절에는 새로운 로봇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한번 만들어 놓으면 추가 노동이 필요하지 않다. 클릭 한 번으로 복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인간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늘어나는 실업자를 보살피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게 된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취업자 1인당 조세부담이 커진다. 당연히 취업자가 불만을 가지게 된다. 취업자는 힘들여 일해도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서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결국 취업자도 불만, 실업자도 불만인 사회가 오고 있다. 취업자가 대신 일해서 실업자를 먹여 살리는 것보다 각자 조금씩 일해서 먹고사는 사회를 꿈꾸게 된다.

◆21세기 유토피아: 노동과 여가의 균형

미래사회는 두 가지 방향 중에 하나로 발전할 것이다. 첫째는 ‘갈등사회’이고 두 번째 방향은 ‘꿈의 사회’이다. 기술 변화에 따라 사회제도를 적응 변화시키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심한 갈등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높은 실업률, 정규직 비정규직의 노동의 이중구조화, 대기업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격차, 양극화와 세습 현상 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노동소득의 차이에서 시작하고, 그 근본 원인은 불합리한 노동제도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술 발전 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제도를 고치면 꿈의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공유하고,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여해 적절한 수준의 세금을 내는 사회다.

이제 노동현장에서 소외된 인간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의 역할은 ‘여가활동’이다. 꿈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일은 기계가 하고 인간은 고상한 일만 한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생소한 발상도 아니다. 약 100년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살았다. 양반들은 책을 읽고 담론을 즐기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과거에는 소수만이 그러한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하인에 해당하는 생산수단의 발달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됐다. 노동과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 이것이 바로 ‘21세기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미래 중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어느 누가 결정해 주지 않는다. 오직 우리 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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