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생각

[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뇌 속 촬영해 영적 체험 측정 가능… 신의 존재에 다가선 과학

조조다음 2016. 12. 26. 18:42

성령(聖靈)이 충만한 계절이다. 거룩한 밤, 홀리 나이트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성령은 성부(聖父), 성자(聖子)와 함께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를 구성하는 삼위일체 중의 한 요소다. 성부는 하나님을 지칭하고, 성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과의 교감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초인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초능력적인 예언을 하게 되고, 병든 사람이 치유되고, 알아듣기 어려운 방언을 말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불교에서도 참선이나 해탈이라는 영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영적인 체험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영적인 체험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것인가. 성령이 증명된다면 신의 존재도 증명되는 것일까.

◆종교의 영적인 체험

현존하는 종교의 기원은 현재로부터 2500년 전쯤에 시작된 철학혁명으로 생각된다. 종교사상 중에서 후세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현세부정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짓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갈 운명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내세에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종교 창시자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며, 인간들도 종교를 통해 그러한 초인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기독교의 성령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이 바로 이러한 영적인 경험이라 생각된다. 초능력적인 체험은 많은 추종자에게 종교의 가장 구체적인 힘으로 인식됐을 것이다. 영적인 체험에 의해 내가 구원을 받고, 중생을 구하고, 복을 받고, 죽음을 초월하는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줬다.

◆니체와 도킨슨의 무신론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종교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종교란 인간을 원초적으로 죄를 짓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이를 이용해 권위와 조직을 유지한다고 비판했다. 신은 이미 없기 때문에,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를 염원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천국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에게 귀 기울이지 말고, 지금 현실에 충실하라고 말했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거론해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가치를 상실하게 했다. 신은 곧 종교였고, 이상주의와 초능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리처드 도킨슨 교수는 1976년에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펴내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는 진화에 대해 유전자 중심적 관점을 소개했다. 현생 동물은 각자의 유전자적 본능에 의해 진화해 온 것이지, 절대자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2006년에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초자연적 창조자가 거의 확실히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적 신앙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킨슨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초인간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니체나 도킨슨 모두 초인적인 성령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성령을 촬영한 뇌 자기공명사진

성령에 대한 궁금증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지난 11월 29일에 발표됐다. 마이클 펠구슨 교수가 이끄는 미국 유타대 연구팀이 논문지 ‘사회 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에 발표한 내용이다. 종교적 경험을 할 때 활성화되는 두뇌의 영역이 약물이나 음악, 도박, 코카인, 니코틴, 섹스와 관련되는 영역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종교는 마약, 섹스 등의 하급 행위와는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이것들이 뇌 속에서는 쾌락을 추구하는 보상회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보상회로란 뇌 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돼 측위세포핵을 자극해 쾌락을 느끼게 하는 뇌세포회로를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도파민은 전전두엽피질을 자극한다. 전전두엽은 고도의 판단과 추론을 수행하는 부분이다. 외부 자극에 의해 도파민이 분비되면, 측위세포핵과 전전두엽피질이 자극돼 쾌락을 느낌과 동시에 높은 수준의 지적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이러한 자극을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극을 취하게 되면 쾌락이라는 보상을 받게 된다는 의미에서 이를 보상회로라 부른다. 예를 들어 코카인과 같은 물질을 섭취하면 도파민이 분비돼 흥분감과 기쁨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생각도 잘 나오고, 또다시 코카인을 찾게 된다.

◆영적 체험은 뇌 속의 도파민 회로 활동

유타대 연구팀은 독실한 모르몬교 남녀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19명의 독실한 남녀 신자를 대상으로 종교적 체험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그 상황에서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했다. 휴식시간을 포함해 1시간 동안 종교지도자의 설교, 모르몬 성경의 낭독을 들려주고 종교 영상을 보게 했다. 실험 중에 참가자들은 영적 교감(성령)을 느끼는 정도를 묻는 질문에 답을 했다. 즉, 피실험자가 영적인 체험을 하는 순간을 찾아 그 순간의 뇌 속 변화를 촬영한 것이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 대부분이 영적 체험을 했다고 답변했고, 종교적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 보상회로와 전전두엽피질이 반응하는 것이 관찰됐다. 즉, 자기공명영상은 뇌 속의 쾌락의 지역(도파민과 측위세포핵)과 고급 지적인 판단지역(전전두엽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연구팀은 영적 체험을 느끼는 1~3초간 뇌의 보상회로가 강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전전두엽의 활성화는 영적 체험 동안에 높은 수준의 정신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됐음을 보여줬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은 뇌의 깊은 곳에 있는 변연계의 지배를 받고, 고급 지적활동은 전전두엽피질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인 체험은 본능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도덕적 가치를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통념과 일치한다. 그리고 동양 종교에서 강조하는 명상과 참선도 결국 뇌 속에서는 동일한 보상회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학을 통해 신의 존재에 접근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 들어와서 종교의 위치는 크게 변화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의 존재를 둘러싸고 과학과 종교는 대립과 갈등의 평행선을 유지해 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유타대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영적 체험이 정신적인 허상임이 증명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성령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했고, 영적인 활동이 신체 변화를 일으켜 과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성령 체험자와 니체와 도킨슨 사이의 간극을 메워줄 가능성이 보인다. 종교 활동을 하는 동안에 우리의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규명함으로써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잠재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와 같이 21세기 인간은 과학을 통해 신의 존재에 접근하고 있다. 만약 영적인 활동을 측정하고 영혼을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다면 ‘종교와 과학의 화해’의 계기도 될 것이다. 아울러 서로 다른 종교의 영적 활동도 뇌 속에서는 결국 동일한 활동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종교 상호 간의 존중과 화해’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