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생각

[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인간이 만든 도구, 인류의 삶과 생각을 바꾸다

조조다음 2016. 11. 11. 07:26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런데 이 그릇이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 우리가 동그랗게 생각을 해도, 그것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으면 표현될 수 없다. 표현되지 않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인간이 만든 언어는 생명이 없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사고는 도구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도구를 지배하고 있다. 모든 도구는 인간이 만들었다. 그러나 도구를 사용하다 보니 인간이 다시 도구의 영향을 받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즉 도구에 따라 인간의 생각하는 방식과 내용도 변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도구가 인간의 삶과 사상을 바꿔 온 역사

우리 인간은 원시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기(약 250만년 전)부터 도구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은 먹이를 잡을 때 나뭇가지와 돌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물과 싸울 때에도 뾰쪽한 돌을 이용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돌을 갈아 뾰쪽하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돌을 사용해 싸우니 다른 동물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몸집도 작고 빠르지도 않은 원시 인류가 적당한 영양을 공급받아 더 진화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유인원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0만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먹은 것은 약 50만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되자 유인원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됐다. 우선 여러 가지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감자처럼 쓴맛이 나는 식물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영양 공급이 좋아져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그리고 익혀 먹기 때문에 입에서 씹는 시간이 짧아졌다. 육류와 식물을 익혀 먹으면 소화 흡수가 잘 된다. 그러니 동물처럼 오래 씹을 필요가 없어졌다. 입의 기본 용도인 씹는 기능의 약화로 나타났다. 두상에 있는 이빨과 턱뼈가 약화됐다. 턱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얼굴 모습이 평면으로 변했다. 질긴 것을 씹지 않게 되자 두개골도 얇아졌다. 자연스럽게 두뇌가 커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불의 사용이 가져온 언어 기능

씹는 역할이 줄어들자 입에 있는 근육도 노는 시간이 많아지고 약해졌다. 하루에 23시간을 놀게 된 입 근처의 근육은 약해지면서 정교해졌다. 어떤 것이든 힘이 센 부분은 정교함이 떨어진다. 우리 몸에서 힘이 센 다리는 손에 비해 정교하지 못하다. 입술과 혀, 그리고 목구멍의 근육이 협동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소리들은 정교해져 다른 사람과 신호를 주고받는 일에 사용됐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언어 기능을 갖게 된 과정이라 말한다. 약 7만년 전에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에게 일어난 언어와 인지혁명이다. 인간은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더욱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동물은 맨발로 먹이를 잡고 싸우는 데 반해 인간은 금속으로 도구를 사용하니 훨씬 더 유리한 경쟁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단순히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작전을 짜서 싸우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는 호모사피엔스는 결국 지구상의 동물을 제압하고 지구를 정복하게 된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위해 또는 다른 동물의 공격을 피해서 떠돌아다니던 인간은 여유를 갖게 됐다. 이제 수확을 기대하며 씨앗을 뿌리는 여유가 생겼다. 농경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씨족사회 부족사회를 거치면서 국가의 개념이 정착됐다. 이제는 다른 동물과 싸우는 것보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게 됐다. 국가라는 체제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 깊이 성찰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됐다. 2500년쯤에 시작된 철학혁명이다. 동양에서는 공자가 나타나고, 인도에서는 석가모니, 중동에서는 조로아스터가 그 당시의 현인들이다. 이들의 가르침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랑’이다. 사랑하며 살라는 가르침은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일부 성직자들에 의해서 독점돼 종교가 인간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신본주의 사상이 지배하게 됐다.

◆인쇄술이 가져온 종교개혁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는 15세기 서양의 인쇄술이 나오기까지 계속됐다. 한국에서 먼저 발명된 금속활자는 세계문명에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1450년에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활자는 서양세계를 뒤집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동안 성당 내에서만 읽히던 성경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됐다. 많은 사람이 종교적인 가르침은 교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정신이 싹트게 됐다. 르네상스는 종교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 음악 과학 분야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473년에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우주를 관측할 수 없었기에 인정받지 못했다. 1608년에는 한스 리페르셰이가 망원경을 발명했다. 1610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관측을 해 지동설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지배하던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게 됐다.

◆항해 기술이 가져온 부르주아 혁명

15세기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 기술에도 진보가 일어났다. 그동안 사용하던 돛단배는 바람을 등지고 전진하는 방식으로 항해했다. 그러나 범선이 출현하면서 항해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바람을 등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옆으로 해 전진하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이것은 비행기가 뜨는 원리인 베르누이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돛을 둥그렇게 해 기압 차이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양력에 의해 전진하는 것이다, 범선 기술에 의해 바람의 방향에 상관없이 배는 전진할 수 있게 됐다. 먼 바다까지 항해가 가능하게 돼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무역을 통해 재화가 유럽에 쌓이고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게 됐다. 그동안 왕과 귀족이 독점하던 권력을 신흥 부자도 나눠 갖기를 주장해 발생한 혁명이 1789년 프랑스혁명이다.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형성되고 인권의식이 확산되게 됐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은 인간의 생각과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기술이 자본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생산방식을 개발하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선순환의 자본주의 원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산업발전의 과실은 노동자들을 비켜갔다.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노동자의 삶은 어려워지고, 이러한 부작용을 지적한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년)이 나오게 돼 사회주의 사상이 싹을 트게 된다.

◆미래의 도구가 바꿀 인간의 삶

패러데이가 개발한 전기모터(1821년)는 또 다른 혁명을 가져왔다. 전기모터를 이용한 생산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전기모터는 생산시설에 그치지 않고 가정에도 들어왔다. 가전제품이 생겨나고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여권신장의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컴퓨터는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를 만들고야 말았다. 현재 우리 인간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도구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인공지능(AI), 유전자가위, 배아복제 등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도구가 될 것이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기계와 인공적으로 조작된 인간들과 함께 사는 세계가 오고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의 삶과 사상을 바꿔 놓았듯이, 새로 개발되고 있는 도구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인간은 이러한 도구들과 함께 하는 삶의 방식과 사상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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