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엔지니어들이 꼽는 위대한 스승, 자연 (KISTI)

조조다음 2013. 5. 24. 06:51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활약했던 화가이자 과학자이자 공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자연모사공학, 또는 생체모방에 딱 들어맞는다. 자연모사공학이란 말 그대로 생물들의 생태나 신체구조를 모방하거나 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기술 조류를 일컫는다.

과학과 공학에서 자연모사공학이 주목받은 것은 최근이지만, 최근에야 그 이름이 붙었을 뿐, 사실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자연모사공학의 출발점은 재닌 M. 베니어스(Janine M. Benyus)다. 그녀는 1997년 생체모방이라는 책에서 자연의 설계와 프로세스를 모방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이 책에서 베니어스가 이름붙인 생체모방은 그대로 공학의 한 분야, 나아가서는 방법론을 일컫는 이름이 됐다. 이후 생체모방협회를 설립한 베니어스는 수많은 강의와 컨설팅을 통해 과학자와 공학자, 기업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자연모사공학은 이미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신칸센이 있다. 신칸센은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로 일본 첨단 기술의 상징이자 비행기에 밀려 저평가되던 철도 산업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장본인이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신칸센이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꼽힐 만큼 일본인들의 관심과 애정도 대단하다.

 

일본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신칸센에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소음이었다. 신칸센 열차들이 좁은 터널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면 터널 내 공기가 갑작스럽게 압축되면서 압력이 높아진다. 열차가 터널에 깊이 들어올수록 압축은 점점 더 심해져서 음속에 가까운 압력파가 발생하고, 이 파동이 터널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면서 강력한 저주파 파장을 발생시켜 굉음을 낸 것이다. 때문에 터널 주변에서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신칸센의 엔지니어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물총새였다. 물총새는 수면 위 1.5m 정도 높이에서 물속으로 빠르게 다이빙하며 물고기를 잡는다. 저항이 약한 매질(공기)에서 강한 매질(물)로 빠르게 진입하는데도 물이 거의 튀지 않아 먹잇감이 뭔가를 눈치 챌 겨를도 없이 사냥 당하고 만다. 물총새만의 고요한 사냥 비법은 바로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에 있다. 날개를 접고 다이빙할 때의 물총새는 앞쪽이 가늘고 길게 튀어나온 탄환 모양이 되며, 이 덕분에 수면에 진입할 때 파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총새를 본뜬 디자인이 적용돼 탄생한 것이 바로 500계열의 신칸센이다. 1996년에 개발된 500계 신칸센은 이전의 모델들과 달리 뾰족하게 튀어나온 앞머리와 항공기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특유의 멋진 디자인 덕분에 터널에서의 소음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500계 신칸센의 디자인은 이후 모델들에 계승돼 현용 최신 모델인 E6계열도 머리 부분이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기대를 모으는 풍력발전기에도 동물에게서 얻은 지혜가 적용됐다. 혹등고래는 이름 그대로 등과 지느러미에 혹과 같은 돌기가 잔뜩 나 있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동물이라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부가 매끈해야 할 것 같은데 이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을 지닌 이유가 무엇일까?

혹등고래 앞지느러미의 앞쪽에 난 작은 혹들은 유체의 흐름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지느러미 표면 부분에는 소용돌이가 생기는데, 이들은 지느러미에 물이 착 달라붙어 흐르도록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지느러미에 가해지는 유체 압력이 증가해 양력이 커지고, 이로 인해 혹등고래는 거대한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캐나다 풍력에너지 연구소에서는 혹등고래의 지느러미에서 힌트를 얻어 풍력발전기의 회전날개에 요철을 더했다. 실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요철을 적용한 회전날개는 같은 속도의 바람에도 이전의 풍력발전기보다 두 배의 회전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항력도 줄어들어 효율이 크게 개선됐다.

고속철도와 풍력발전기 이외에도 물을 튕겨내는 연잎의 표면구조를 응용한 발수소재, 어디에든 달라붙는 게코 도마뱀에서 영감을 얻은 흡착 소재, 홍합의 결합조직에서 힌트를 얻은 접착제 등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