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소식’하면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조조다음 2022. 5. 16. 06:30

 
파키스탄 북쪽 지방의 조그마한 마을 훈자는 세계 제일의 장수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고도 2500m에 자리 잡은 이곳 마을 주민의 평균 수명은 120세로 자기 나이보다 30살은 젊게 사는 듯이 보인다. 평균 수명 세계 1위로 널리 알려진 일본에서도 오키나와는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한때 훈자 마을은 100세 이상이 마을 인구의 40%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장수 지역이었다. 장수 마을로 유명한 파키스탄의 훈자, 그리고 일본의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공통점은 ‘소식’이다. 이곳의 주민은 유달리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 이와 같은 사실이 언론을 타자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소식해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소식하면 정말 장수할까? 원숭이 연구에서 입증
과학자들은 ‘소식하면 장수한다’는 믿음이 정말 사실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 적게 먹으면 오래 사는 건지 그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노력해왔다. 2009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는 붉은 털 원숭이 80여 마리를 대상으로 20여 년간 칼로리 섭취를 제한한 장기 실험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원숭이 집단을 둘로 나누어 한쪽에는 풍족하게 먹이를 주었고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30% 적은 양의 먹이를 주는 식으로 칼로리 섭취량에 차이를 두었다. 실험 결과, 모든 원숭이가 27살 이상의 노령기에 접어들었지만, 30% 적게 먹은 원숭이는 털이 풍성하고 피부에도 탄력과 윤기가 있어 보인 반면, 먹이를 충분히 먹은 원숭이는 몸에 털이 많이 빠지고 몸에도 주름이 많아 한눈에 보기에도 더 늙어 보였다. 생존율에도 차이가 생겨서 먹이 제한을 두지 않은 원숭이 38마리 중에는 14마리가 폐사했지만 먹이 제한을 둔 38마리 중에는 5마리가 폐사하여 평균 수명도 먹이 제공에 제한을 둔 쪽이 더 길었다. 게다가 먹이 제한을 둔 실험군에 속한 원숭이는 암, 당뇨병, 심장병, 뇌 위축 등의 질병이 적게 나타났다. 적어도 원숭이에 관해서는 소식이 노화방지나 회춘 효과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실제로 소식이 장수에 도움이 되는 여러 사례, 그리고 원숭이를 비롯한 여러 동물 실험을 통해 소식과 장수 사이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명확해지자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2012년 이스라엘의 발-이란 대학교 소속 연구팀은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공복 상태를 유지하면 ‘회춘 유전자’로 알려진 시르투인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시르투인 유전자는 199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생물학부 레오나르도 갤런테 교수가 효모에서 처음 발견했는데, 노화나 암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병원체의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면역항체의 활성화, 몸 전체 세포의 유전자를 스캔해 복구하는 등 다양한 노화방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시르투인 유전자를 활성화하면 초파리의 수명은 30%, 선충의 수명은 50%나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포유류는 7개의 시르투인 계열 유전자를 가지는데 이 중 여섯 번째 유전자인 ’ 시르투인 6’에 결손이 생기면 노화와 흡사한 증상이 생긴다. 발-이란대 연구팀은 시르투인 유전자에 유전자 조작을 가하여 쥐의 수명을 약 15% 늘리는 데 성공, 시르투인 유전자가 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런데 자연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 유전자가 활성화될까? 비결은 칼로리 섭취를 억제하고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여 기아 상태가 되면 시르투인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시르투인 유전자는 세포 안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는 오토파지라는 기관에 명령을 내려 세포 안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식량이 부족해 양분이 부족해지자 세포 차원의 손상을 막기 위해 복구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인간 대상으로 소식의 영향 연구
올해 예일대 연구팀은 소식과 장수의 관계를 밝힐 또 하나의 힌트를 찾아냈다.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이 연구는 26세에서 47세의 비만이 아닌 성인 238명을 모집했고 그들에게 칼로리 섭취량을 권장량보다 줄이도록 요청한 후 2년 동안 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했다. 이들은 평소보다 적게는 12%에서 많게는 22% 칼로리 섭취량을 줄였으며 평균은 약 14% 정도 감소했다. 이는 남성을 기준으로 약 300 kcal 정도의 열량에 해당한다. 이번 연구는 소식하면 오래 산다는 오랜 믿음을 처음으로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검증해 본 연구다. 
 
연구진은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흉선을 강화함으로써 파리, 벌레, 쥐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에 주목했다. 심장 주변에 위치한 흉선은 질병과 싸우는 백혈구의 일종인 T 세포를 생산하는 기관으로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더 빨리 노화한다. 40대에 접어들면 흉선의 절반 이상이 지방에 쌓여 T 세포 생산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몸속 T세포 농도가 낮아지면 암세포를 상대하는 T 세포의 부재로 인해 암에 걸릴 위험이 커지고 병균에 의한 질병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흉선의 기능 저하는 나이가 들면 병에 걸리기 쉬운 주된 이유인 것이다. 
 
소식을 하면 흉선의 노화 속도를 늦추고 질병에 대한 대항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 연구팀은 2년 후 소식을 한 사람들의 흉선에는 상대적으로 지방이 덜 쌓였음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흉선의 무게와 주변을 둘러싼 지방의 무게, 그리고 T세포 수치를 측정했고 흉선이 실험 시작보다 적게 먹은 2년 후에 더 많은 T세포를 생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의외의 발견도 이어졌다. 소식은 실험 참가자의 지방 조직을 변화시켰다. 지방 조직은 지방과 함께 대식세포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면역 세포를 포함하는데 소식 후 1년이 지나자 지방 조직의 유전자 중 혈소판 활성을 관장하는 PLA2G7 단백질의 유전자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당뇨병, 심혈관 질환 및 일부 암을 포함한 대사 및 면역 질환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단백질은 대식세포에 의해 생성되며 노화와 관련된 염증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칼로리 섭취를 줄이자 PLA2G7 단백질 수치가 낮아져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점은 소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써서 PLA2G7 단백질 양을 줄여도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생쥐를 대상으로 PLA2G7 유전자를 조작하면 흉선은 젊어지고 노화 염증은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약물 등의 방법을 통해 PLA2G7을 조절하면 소식을 하지 않고도 장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약은 진시황제가 찾던 불로불사의 묘약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한 상상이지만 적게 먹으면서 오랫동안 기다려 봄직한 즐거운 상상임에 틀림없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