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불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감정 반응 이기도 하다.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어서 느끼는 불안과 진짜로 의료적 치료를 요하는 불안 장애는 뭐가 다를까?
지속적인 불안이 있을 때 불안 장애로 진단한다
불안장애는 명칭 그대로 불안으로 인한 장애다. 이로 인해 불안도 종종 병적인 것으로 오인되곤 한다. 하지만 불안은 친숙하지 않거나 위협적인 환경에 대응해 나타나는 인간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조마조마한 마음에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불안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수능 시험이 다가오면서 발생한 불안은 더 많은 공부로 이어지는 법이다. 아울러 불안은 적응해가는 특성을 보인다. 긴장한 탓에 첫 발표를 망친 회사원도 몇 년 뒤에는 농담도 하면서 발표를 잘 하지 않던가.
정상적이고 때로는 삶에 도움이 되는 불안이 과도해지면서 일상의 삶에 문제를 일으키면 불안장애가 된다. 그러나 불안이 일으킨 어려움이 일시적인 경우에는 불안장애로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무대에 선 연주자가 불안 때문에 애써 준비한 공연을 한두 번 망쳤다고 바로 불안장애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불안장애나 소아에게 진단을 내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적어도 6개월 이상 과도한 불안과 그로인한 생활 속 불편이 지속할 때 비로소 질환이라 부를 수 있게 된다.
불안장애가 일으키는 불편함은 우리가 불안할 때 경험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이성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소개팅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심장은 쿵쿵 뛰거나 식은땀이 나고,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부족하게 여기고, 말을 더듬거나 상대의 시선을 회피하게 된다. 즉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신체적 변화가 발생하고 인지의 왜곡이 일어나며,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까지 바뀌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매력을 갖고 있어도 상대의 호감을 얻기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이성 교제란 삶의 한 영역에서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2015년에 우리나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1%의 사람들이 불안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불안장애가 주로 인생 초기에 시작하고 치료가 잘 되지만, 동시에 완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불안장애는 남자보다 여자에서 더 흔하고, 다른 불안장애 혹은 정신 질환이 공존하는 비율이 높은 임상적 특징을 지닌다.
불안장애 각각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애착의 대상에게서 떨어질 때 불안을 느끼는 것이 분리불안장애고, 특정 상황에서 불안으로 인해 말을 지속해서 못하는 것이 선택적 함구증이다. 이 두 질환은 예전에 소아, 청소년의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질환이었다. 특정 공포증은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처럼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무서워하는 것이고, 광장공포증은 두려움이 커지는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어렵거나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사회불안장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온전히 노출되는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것으로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안절부절못하는 특징을 지닌다. 공황장애는 여러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극심한 불안 발작을 겪은 뒤 이를 계속 염려하거나 관련 상황을 회피하는 모습을 띠게 된다. 특정 대상, 일부 상황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 과도한 걱정과 염려를 경험한다면 이는 범불안장애에 해당된다.
불안 장애는 의학적 치료가 꼭 필요하다
다양한 불안장애의 원인을 뭉뚱그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뇌의 전전두피질과 편도체가 자주 언급된다. 전전두피질은 주로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고, 편도체는 공포 처리를 담당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오면 편도체를 포함한 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하는데, 이때 전전두피질은 자극의 위험 정도를 평가해 편도체를 조절한다. 따라서 자극이 위험하지 않으면 편도체가 억제되고, 위험하면 편도체의 활동이 지속된다. 불안장애 환자들의 경우에는 뇌가 두려운 자극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전전두피질이 편도체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불안장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닌 뇌 기능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학적인 도움이 필수적이다. 물론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정신과를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불안장애를 내버려두면 삶이 계속 피폐해질 뿐만 아니라 우울증, 알코올 의존과 같은 다른 심리적 문제마저 동반될 수 있다. 아울러 불안장애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신체적 이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불안장애 환자들에서 신체 노화 속도를 나타내는 염색체 끝 부분의 텔로미어(telomere) 길이가 짧아진 것으로 드러난 연구 결과도 있다.
불안장애의 치료에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CBT)가 주로 시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의 부작용이나 의존성을 걱정하곤 하는데 정신과 의사의 안내대로 복용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지행동치료는 과도한 불안을 조성하는 ‘인지’ 왜곡을 찾아내 교정하고, 건강하지 못한 부적응 ‘행동’을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최근 뇌 영상을 통해 인지행동치료에 효과가 있을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을 예측한 연구가 있었는데, 향후 불안장애 환자 각자에게 맞춤 치료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지리라 기대된다.
글 :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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