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생각

[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AI ‘창작의 주체’ 화가도 도전… 성공은 인간의 공감에 달렸다

조조다음 2017. 8. 4. 08:20

구글, 인공지능 화가 ‘딥드림’/ 기존 이미지 추상화 재해석/ 작품 경매로 9만달러 수입/ 미술사, 파격과 실험의 역사/ 마사초·마네 등 이단아 등장/ 새 기법, 숨겨진 감성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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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프로그램 알파고를 만든 구글은 인공지능(AI) 화가 딥드림을 개발했다. 딥드림은 주어진 이미지를 보고 이를 추상화로 재해석해 빈센트 고흐의 그림처럼 만들어 주는 추상화가다. 구글은 2016년에 이렇게 만들어진 그림 29점을 샌프란시스코 미술경매소에 공개해 개당 2200~9000달러의 값에 팔아서 총 9만7600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AI가 인간의 창작활동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창작이란 예술가가 사물로부터 얻은 창조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형식으로 정착시켜 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창작은 독창성과 개성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AI가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수천만원씩 주고 구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미술사는 이단아들의 도전 역사

르네상스 초기에 이탈리아의 화가 마사초는 독특한 그림을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1426)라 불리는 그림 속에는 사람들이 앞뒤 있는 것처럼 보이게 그려진 것이다. 원근법을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원근법과 명암에 의한 입체적인 공간표현 방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이르러 르네상스미술로 완성됐다.

1850년 파리 살롱전에 발표된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오르낭의 매장’은 관객과 비평가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장엄한 역사화나 종교화에 어울릴 법한 가로 6.6m의 거대한 크기의 화면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촌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전통적인 형식의 고상한 작품을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영웅적인 죽음도 아닌 평범한 죽음을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미술이란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상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리얼리즘’의 출현이었다.

당시 공식적인 전시회인 살롱전에 낙선된 에두아르 마네는 1863년의 낙선자 전시회에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출품해서 세상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정장을 한 남자들과 함께 발가벗은 창녀들은 품위라고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낙선자 전시회를 허락했던 나폴레옹 3세마저도 더 이상 이러한 전시회를 허락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종래의 전통적인 어두운 화면을 벗어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대상으로 밝고 선명한 색채를 구사한 ‘이단아’ 마네의 시도는 인상파 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눈에 보이는 것을 경쾌한 색채로 표현하는 방식이 인간의 숨겨졌던 감성을 깨운 것이다.

◆숨겨졌던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자가 승리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은 르네상스 시대의 마사초 이후에 정립돼온 원근법에 도전했다. 그림 속의 각 사물이 어느 한 지점에서 투시되듯이 질서정연하게 위치하는 전통적인 기법을 거부했다. 그가 여러 차례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1885~1906년)의 그림들은 그의 화풍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후기에 갈수록 화폭 속의 물체들이 조각조각 분절되고, 앞뒤의 물체가 경쟁하듯이 앞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해석해 마치 유리창이 깨진 모습처럼 형상화한 세잔의 그림은 훗날 20세기 미술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고 화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로부터 단순화된 선과 강렬한 색조를 구사하는 고갱과 고흐의 그림이 출현할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앙리 마티스와 그의 동료들은 1905년에 기존의 사실주의를 거부하는 선과 색조를 강조하는 그림을 발표했다. 이들은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대담하게 화면에 펼쳐 상상력의 해방을 시도했다. 전통적인 사실주의의 색채 체계와 명암을 파괴했다. 관람자들은 ‘야만적인’ 색채 사용에 충격받았다. 평론가들은 이들을 경멸하듯 ‘레 포브’(Les Fauves)라고 불렀다. 이 말은 ‘야수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한편 피카소는 20세기 회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아비뇽의 여인’(1906~1907년)을 선보였다. 3차원의 사물을 조각조각 분해해 2차원의 화폭에 재구성하는 큐비즘(입체파)을 창시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도 비난에 시달려

바실리 칸딘스키는 1908년 어느 날 자신의 작업실에 거꾸로 놓인 그림을 보게 된다. 그는 거꾸로 그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사물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신만의 미적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20세기 미술의 기념비적인 추상화 ‘구성 IV를 위한 스케치’(1910년)가 탄생한 것이다.

피터르 몬드리안은 1930년에 기하학적인 구성과 색만 존재하는 그림을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이란 이름의 그림이다. 기하학적인 구성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이 그 겉모습은 비록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공통적인 구성이 존재하고, 이러한 본질적인 구성을 추출해 표현하는 것이 화가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리처드 해밀턴은 1956년에 콜라주 작품 ‘오늘날 가정을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무엇인가?’라는 긴 제목의 작품을 발표했다. 잡지에서 오려낸 남녀 모델 사진, 축음기 사진 등 상업적인 이미지를 덕지덕지 붙인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싸구려 이미지를 미술의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팝아트(Pop Art)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러한 방식은 앤디 워홀에 의해서 대량생산 방식으로 발전했다. 전통적으로 예술의 존재감은 독창성이었다. 다수가 아니라 단 하나인 것에 대한 가치가 중요했다. 앤디 워홀은 이를 뒤집었다. 대량소비를 위한 미술품을 만들어 고급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이단아’들의 도전과 갈등은 서양미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에 ‘추사체’라는 독보적인 서체를 완성한 추사 김정희도 처음에는 괴기한 글씨라는 평가에 시달렸다. 심지어 “근자에 들으니 제 글씨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크게 괴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혹 이 글씨를 괴하다고 헐뜯지 않을지 모르겠소”라는 하소연의 편지를 남길 정도였다.

◆창작의 주체인 화가의 존재에 대한 도전

미술사는 이단아들의 도전과 기존 화단의 응전 역사라 할 정도다. 전통을 부정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일부만이 살아남아 오늘날 이름을 남기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전혀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 오고 있다. 그동안의 도전은 화폭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가의 존재에 대한 도전이다. AI가 화가를 대신하려는 도전이다.

구글이 만든 딥드림 외에 다수의 AI 화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렘브란트 미술관은 렘브란트풍의 그림을 그리는 로봇화가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를 개발했다. 화가 겸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헤럴드 코언은 그림 그리는 로봇인 ‘아론(Aaron)’을 선보였다. 아론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색과 형체를 선택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려낸다. 화가 겸 로봇기술자 패트릭 트리셋은 ‘e다윗’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카메라와 로봇 팔을 이용해 실제로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린다.

AI 미술이 훗날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AI 미술이 관객의 숨겨진 감성을 자극해 공감을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예술의 최종 소비자는 결국 인간의 감성이기 때문이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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