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와과학

무인로봇을 심해로 보낸 까닭은? (KISTI)

조조다음 2013. 9. 22. 10:13

 

곡괭이를 들고 안전모를 쓰고 온몸에 시커먼 검댕가루를 묻힌 채 땅굴로 향하는 사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광부의 인상이다. 어둡고 컴컴한 광산으로 들어가 반짝이는 금도 찾고 누런 구리도 캐낸 이들 덕분에 우리는 편리한 생활을 누린다. 그런데 가까운 미래에는 ‘광부’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달라질지 모른다. 땅 대신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며 채굴하는 ‘심해 광부 로봇’의 활약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개발한 ‘미내로(Minero)’가 그 주인공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 순수 기술로 개발해온 미내로는 무게 25톤에, 높이 4m, 길이와 폭은 각각 6m와 5m를 자랑하는 대형 로봇이다. 임무는 심해에 있는 자원을 캐는 것인데, 2013년 7월 19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실험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경북 포항 동남쪽 130km 해역에서 입수한 뒤 수심 1,370m의 깊은 바다에서 광물을 캐는 것을 완수한 것이다. 2018년 이후 수심 5,000m 심해저에서 ‘망간단괴’를 캐기 위한 중요한 과제 하나가 마무리된 셈이다.

광물이라면 땅 위 광산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바다 속 채광은 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수심 2,000m 이상 깊은 바다의 사정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심해저 밑바닥에는 망간을 비롯해 구리와 니켈 등 여러 금속물질이 뭉쳐진 망간단괴가 자갈처럼 깔려 있다. 또 해저산 경사면에는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듯 광물덩어리가 두꺼운 껍질을 이루는 ‘망간각’이 있다. 뜨거운 물이 솟구쳐 나오는 ‘해저열수광상’ 주변에는 불규칙한 광물덩어리가 꾸준히 만들어진다. 이런 자원들을 캐낼 수만 있다면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땅 위의 광산을 바다가 대체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바다 밑바닥에 있는 자원을 채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깊은 바다는 육지와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광물을 건져오는 건 불가능하다. 공기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높아지는 수압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다 속으로 10m씩 들어갈 때마다 1기압씩 압력이 커지는데, 수심 5,000m(500기압)에서는 엄지손톱 위에 어른 8~9명이 올라간 정도의 압력이 생긴다. 이 정도 압력에서는 경차가 손바닥 두께로 찌그러진다.

게다가 망간단괴가 많은 해저의 평야 지대는 무르고 연한 퇴적물로 이뤄져 있다. 만약 여기에 사람이 선다면 늪에 빠진 것처럼 푹 들어가고 만다. 햇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공간에서는 불빛을 켜더라도 바닷물에 흡수돼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 광부의 역할을 하려고 개발된 것이 바로 미내로다.

미내로는 수심 5,000m에서 만나게 되는 엄청난 수압에서도 멀쩡한 모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물렁한 해저 퇴적층에 빠지지 않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트랙 구동 방식의 주행 장치를 이용한다. 로봇이 움직이면 앞부분에 달린 채집 장치가 강한 물제트를 쏴 묻혀 있는 망간단괴를 띄우고, 이때 물제트 뒤에서 망간단괴만 분리해 미내로 내부로 운반한다. 이후 망간단괴는 적당한 크기로 부서져 중간저장소까지 옮겨진 뒤 다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로 전달된다.

망간단괴를 효과적으로 캐기 위해서는 바다 밖에서도 미내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쯤은 위성항법장치(GPS)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바다 속이라는 환경 때문에 불가능하다. 심해저라는 공간에서 빛과 전파는 모두 바닷물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내로는 빛이나 전파 대신 고래의 소통 수단인 수중음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심해저 항법 시스템을 이용한다. 어군 탐지나 잠수함에서 쓰는 소나(Sonar)를 이용한 방식이다.

소나는 수중에서 초음파을 쏘면 다른 물체에 닿았을 때 반사돼 돌아오는 성질을 이용해 물체가 있는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를 인식하는 음파탐지기다. 물론 이런 방식도 수온이나 농도, 깊이 등으로 인해 오차가 생길 수 있다. 미내로는 이를 해결하고 정확한 위치 정보를 얻기 위해 도플러 속도계, 자세 및 방위각 센서, 유량계 등 다양한 센서에서 얻은 정보를 통합한다.

이번 실험에 성공한 연구진은 2015년 태평양 바다에서 수심 2,200m 망간단괴 시험 채광을 계획하고 있다. 수심 2,000m 이상의 깊이에서 작동하는 과제를 통과해야 수심 5,000m에도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이 아닌 다른 채광 장비를 가진 나라들도 수심 2,000m 작동 실험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연구진은 이 부분을 큰 고비로 보고 있다.

미내로가 단계별 실험을 모두 통과하면 수심 5,000m 깊이에 투입돼 본격적인 망간단괴 채광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5배 더 커져 무게가 100톤이 넘는 로봇이 2002년 우리나라가 확보한 태평양 광구에서 활약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국제해저기구(ISA)에서 확보한 독점 탐사 광구는 하와이 동남쪽 2,000km 지점에 있다.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이라 불리는 우리 광구의 넓이는 7만 5000㎢로 남한 면적의 4분의 3 정도다. 이 바다 속 5,000m 아래에는 총 추정량 5억 1,000만 톤, 채광 가능한 추정량 약 3억 톤에 이르는 망간단괴가 매장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1년에 300만 톤씩 100년 동안 캘 수 있는 양이다. 해양수산부의 전망에 따르면 제대로 된 채광기술이 갖춰질 경우 매년 2조 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육지에서 얻을 수 있는 광물자원은 헌재 일부 국가가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고, 그마저도 수십 년 후면 고갈될 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속자원의 값은 계속 높아지지만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광물자원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에겐 미래 확보해둔 태평양 광구가 있고, 개발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미내로도 있다. 하루 빨리 심해저에 있는 광물자원을 캐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수십 년간 바다를 일궈온 수많은 연구진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