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정의가 없다면 왕국은 거대한 강도떼,,,

조조다음 2021. 6. 15. 06:30

전성기의 고대 그리스는 하나의 국가가 아닌 이른바 도시국가들이라고 부르는 작은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시국가들은 주변에 넓은 토지가 있는 타운이 있고 모든 사람들이 걸어서 하루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크기였다.  - 14쪽

 

유대인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믿었지만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빈번한 굴용과 정복으로 추방되었다. - 23쪽

 

중세 과학적 발전에 따라 인간은 우주의 준심에 있지 않고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며 우연한 일들의 체계에 의해 동물의 왕국에서 계통을 이어받은 후손들이라고 간주되었다.  - 59쪽

 

진정한 하느님 숭배 방법은 결코 이성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은 이성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 61쪽

 

낭만주의 운동은 정서, 문화, 민족주의 그리고 해방을 믿었고 이것은 이성, 과학, 진보와 반대로 향하는 움직임이었다. 쌍둥이처럼 한쪽에는 과학과 진보 다른 한편에는 정서와 해방이라는 두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 67쪽

 

세공인이 금반지를 만들어 주기로 한 계약이 있으면 이것은 매매계약인가 세공인의 고용계약인가. 금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답이다. 고객이 금을 제공했다면 고용계약이고 세공인이 금을 제공했다면 매매계약이다.  - 81쪽

 

통치가 아닌 박해 방식의 사회가 외부의 침입에 저항할 활력이나 사기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다.  - 123쪽

 

중세 시대의 estate는 집단을 의미하고 토지 재산을 의미하지 않았다.  - 129쪽

 

정의가 없다면 왕국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아우구스티누스)  - 158쪽

 

기독교가 시작되었을 때 서쪽의 공용어는 라틴어였다. 그것은 교회를 통치하기 위한 언어, 교회의 교리에 관해 논쟁하기 위한 언어, 신앙을 공표하기 위한 언어, 그리고 교회의 업무를 운영하기 위한 언어가 되었다.  - 191쪽

 

농협혁명은 농업관행의 개선과 토지 소유의 재배치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 208쪽

 

중국 문명은 오랜 기간 동안 유럽 문명보다 앞서 있었다. 그렇지만 경제성장이 먼저 일어나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유럽이었다. 1480년 중국의 명 황제는 해외 탐험과 무역을 금지했다. 이러한 자기파괴적 명령은 상대적 퇴보를 야기시켰다.  - 214쪽~215쪽

 

중국에서는 권력이 황제에게 절대적으로 집중되어 있었으며 유교의 고급문화는 제국적 지배를 뒷받침해 주었다. 유럽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으며 고급문화는 여러 요소의 혼합물이었고 세속적 지배에 견고하게 묶여 있지 않았다.  - 218쪽

 

마르크스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지지 않고 생활수준은 상승하고 사회는 노동자와 사장의 두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았다.  - 248쪽

 

레닌 없이는 볼세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독일 장군들의 정부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성공에 책임이 있다(독일은 러시아가 프랑스와 연합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키기 위한 정략적 필요 아래 레닌의 비밀 귀국을 도왔다)  - 264쪽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결과 독일에 가한 제한과 굴욕은 다음 전쟁의 씨가 되었다.  - 269쪽

 

히틀러가 장황하고 두서없이 두껍게 쓴 나의 투쟁은 독창적 사상도 없고 단지 군중을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방법, 집단암시와 집단효과라고 부른 것을 기록한 것이었다.  - 276쪽

 

연설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인쇄물은 너무나 차분한 매체였다. 논리적인 추론은 작동하지 않았다.  - 276쪽

 

히틀러는 러시아 공산주의를 파괴하는 데 실패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적군을 중부 유럽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 288쪽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존 허스트, 김종원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