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는 새벽에 사람들이 다급하게 일어나 뒷산에 오른다. 거울, 액자, 매트리스, 위성 안테나 등 넓적한 물건을 손에 들고 있다. 동쪽을 바라보며 소지품을 활짝 펼친 채 힘껏 저항하지만 태양은 여지없이 떠오르고 아침이 시작된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이런 멘트가 등장한다. “월요일에 맞서지 마세요.”
어느 해외 구인 구직 서비스의 광고 장면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찾아내기만 하면 월요일이 힘들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휴일이 끝나고 평일이 시작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일하기 싫어지는 ‘월요병’ 증세는 국적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월요병은 피곤함, 무기력함, 우울함을 유발하지만 정식 질병이 아닌 일종의 부정적 심리상태로 분류된다. 영어로도 병, 질환, 증상, 증후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고 우울감 정도의 뜻을 가진 ‘먼데이 블루스(Monday blues)’라 한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보건 역학과에서 월요병의 단서가 될 만한 사실을 찾아냈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 중에서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잠에서 깬 직후에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뜬 후 20분이 지나면 최대치에 도달한다.
연구진은 평일과 주말의 차이점을 알아내기 위해 47~59세의 남녀 196명을 대상으로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했다. 그러자 일터에 가야 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기간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월요일을 맞이하는 데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미다.
2009년에는 일본 쇼와대학교 연구진이 3만 2,000명의 기록을 분석해 월요일에 자살할 확률이 휴일보다 1.5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월요일 아침에 일어난 후 오전 11시가 지날 때까지 직장인 대부분이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는 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
비슷한 현상으로 ‘새 학기 증후군(new semester blues)’이 있다. 신나는 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 갈 시기를 맞이하면 감기가 쉽게 걸리고 머리나 배에 통증을 느끼거나 이상한 버릇을 반복하기도 한다. 두려움과 중압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정신 상태와 면역 체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학업에 부담을 느낄 만한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한창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생과 예비 초등학생들도 새 학기 증후군을 겪는다. 특히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이면 곳곳에서 학부모들의 한숨 소리가 늘어난다. 책가방만 메면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있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기 때문이다. 병원에 데리고 가면 스트레스성 복통이라는 진단만 받을 뿐 뾰족한 대책을 찾기 어렵다. 요통이나 수면 장애, 소화 불량을 호소하거나 헛기침을 하고 눈을 반복적으로 깜빡이는 틱 증후군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트레스의 주범으로는 ‘인간관계’가 지목을 받는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면 그동안 단짝처럼 지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데 이때 아이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은 상당하다. 어른들은 “그까짓 학교생활이 무슨 대수라고 유난을 떠나”라고 하겠지만 아이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무시해버릴 만한 수준을 넘어선다.
영국 워릭대학교 연구진이 6,400명이 넘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1991년부터 10년 이상 추적 조사했더니 심각한 결과가 도출됐다. 2~9세의 어린 시절에 전학을 많이 다닐수록 이후에 정신적인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3번 이상 전학을 경험한 아이는 환각, 망상 등 정신 질환에 시달릴 확률이 평범한 아이들의 2배에 달했다. 싸움이나 왕따 같은 큰 사건이 아닌 단순한 전학만으로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헤어짐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는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성인에 속하는 대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 국내 취업포털 서비스가 대학생 32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더니 새 학기 증후군을 겪는 원인의 70% 이상이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은 월요병을 통해 학생들은 새 학기 증후군을 통해 급격한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셈이다.
환자 스스로가 느끼는 주관적 통증이나 증세를 ‘증후’라 부른다. 증후가 모이면 ‘증후군’이 된다. 여러 사람에게서 유사한 증후가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다양해서 제대로 규명하기 어려운 질환을 가리킨다. 월요병도 새 학기 증후군도 아직 정식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증후군의 일종으로 인식된다.
증후군을 치료하려면 근원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최선이다. 월요병은 급격한 상태 변화와 심리적 부담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습관을 반복하면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커지면서 스트레스도 덩달아 늘어난다. 업무의 강도를 줄일 수 없다면 신체활동이 수반되는 휴식을 가짐으로써 생활의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 가끔은 성과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부담감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새 학기 증후군은 더욱 세심한 치료가 요구된다. 공부, 친구, 통학거리, 선생님, 부모님 모두가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되기도 전에 “학년이 바뀌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거나 “이제 노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라”는 식으로 부담을 주면 역효과만 난다. “작년처럼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편이 좋다.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학교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된다.
미취학 아동이나 저학년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분리 불안증을 겪을 위험이 있다. 방치하면 집중력 저하로 인해 학습 부진을 겪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등교 거부와 가출로 이어지기도 하니 따뜻한 말과 포옹으로 두려움을 잠재우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두려움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연약해질 수밖에 없다.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며 꾸중을 하는 부모님 자신도 혹시나 출근이 무서워 월요병을 겪지는 않는지 돌아보자. 충분히 극복 가능한 장애물임을 인식하고 단계적인 습관 변화와 꾸준한 배려를 통해 온가족이 함께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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